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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191218 #67 강제 모바일 디톡스100일 글쓰기 2019. 12. 22. 08:00
#67 강제 모바일 디톡스 한동안 100일 글쓰기를 못했다. 뭐, 아예 할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굳이 둘러대 보겠다. 아이폰을 도둑맞았기 때문이다. 혼자 다닐때는 사소한 물건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은 채 안전하게 한 달 동안이나 돌아다녔는데, 친구가 합류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서 무려 폰을 도둑맞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오히려 일행이 생겨서 긴장을 풀었기 때문에 폰을 손에도 들지 않고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고, 소매치기에게 틈을 보였다. 아, 이탈리아 거지들은 진짜 사납고 무섭다. 막상 폰을 도둑맞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엥, 폰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거지. 막연히 폰이 없으면 못 하게 될 것들을 나열해보았다. 일단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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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191216 #64 모든 것을 잡을 수는 없어100일 글쓰기 2019. 12. 17. 05:31
#64 모든 것을 잡을 수는 없어 1. "모든 것을 잡을 수는 없어." 그는 말했다. 나는 창틀에 몸을 기댄 채로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정말로, 겨울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바람이 얼굴을 사정없이 건드렸다. 뒤늦게 그의 말에 대충 반응을 했다. 으응, 그래. 그는 진지했다. 눈동자는 초점이 나간 상태였고, 유일한 청자인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되뇌는 것이 분명했다. 불분명하고 근본적인 문장을 연달아 내뱉었다. * 2. 빨래를 하고 있다. 저번 호텔에서 빨래를 한 번 하려니 거의 10유로를 내야 해서 다음 호스텔에 laundry room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경험상 프런트 직원에게 따로 부탁해야 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따로 방과 기계가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가격이 훨씬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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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191215 #63 가자 해가 머물러 있는 곳으로100일 글쓰기 2019. 12. 16. 02:59
#63 가자 해가 머물러 있는 곳으로 베를린은 정말 춥다!! 아침부터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이렇게 춥다니, 아씨, 를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다녔다. 나름 목도리도 챙겨서 매고 코트도 야무지게 걸쳤는데 몸이 덜덜 떨려왔다. 원래 계획했던 일정의 반도 소화하지 못했다. 갑자기 가기 싫어진 곳이 몇 개 있고, 운영을 하지 않았던 곳이 몇 개 있고, 해가 너무 빨리 져서 그냥 숙소에 빨리 돌아오고 싶었던 것도 있어서였다. 오늘의 패착은 휴대폰 보조배터리를 밤새 충전하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두 시가 됐을 때였나, 배터리가 다 닳아버렸다. 하루 종일 데이터를 켠 상태로 구글맵을 사용하다 보면 이런 일은 흔한데, 보조배터리를 그래도 삼십 분은 사용할 수 있겠거니 하고 충전을 시도해봤는데 몇 분만에 보조배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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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191214 #62 음식을 사 먹는다는 게100일 글쓰기 2019. 12. 15. 06:51
#62 음식을 사 먹는다는 게 아침을 먹지 못하고 밖을 나돌아 다녔다. 공항 터미널에 맥도널드나 버거킹, 서브웨이 혹은 KFC처럼 무난한 가격에 배불리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 점이 하나쯤은 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이었다. 막상 체크인을 겨우 해내고는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니, 사방이 명품점이고 식사를 해결할 곳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온갖 곳을 돌아다녀본 결과,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고급 레스토랑을 겨우 발견했고, 비싼 가격에 엿같은 식사를 했다. 샌드위치는 차고 초라했으며, 브로콜리 수프는 말 그대로 브로콜리를 물에 끓인 맛이었고, 바게트는 딱딱했다. 따뜻한 음식을 값싸게, 그리고 배가 찰 만큼 먹고 싶다. 집에서 배가 고파오면 샐러드를, 파스타를, 볶음밥을, 밑반찬을 한가득 해서 배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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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191213 #61 즉흥이 주는 즐거움100일 글쓰기 2019. 12. 14. 06:01
#61 즉흥이 주는 즐거움 플래너나 다이어리에 집착하지만 계획을 세우고 그걸 실행해나가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계획을 적어놓은 빼곡한 글씨들, 내가 하루를 이렇게 살아왔다는 물적인 기록인 것이다. 막상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는 재능이 없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계속 미루기만 하고, 괴로워한다. 내가 잘하는 것은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A라는 계획이 있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A를 해볼 수 없다면, 대안을 찾아내고 A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 굳이 오늘 있었던 일로 나열해 보자면 미술관을 갔다오고 원래 들리기로 했었던 옷가게가 너무 먼 걸 눈치채고는 가까운 곳으로 목적지를 바꾼다든지, 잃어버린 이어폰을 충동적으로 다시 산다든지(두 번째로 사는 것이다!), 빈티지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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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191212 #60 제목없음100일 글쓰기 2019. 12. 13. 06:16
#60 제목 없음 딱히 쓸 글을 상징하는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뭐, 최근에는 주제를 정해놓고 백일 글쓰기를 해내는 일도 드물었으며 제목을 지어봤자 그날 하루를 요약하는 단어의 나열뿐이긴 하였으나 오늘은 그마저도 생각나지 않는다. 일단 쓰겠다. 루브르 박물관은 정말 크고 컸다. 예약한 투어의 가이드 뒷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고, 유명한 작품을 봤다. 편하긴 편했다. 이게 왜 유명한지 심혈을 기울여서 혼자 작품을 분석해보고, 영어 오디오를 해석해보고, 아무런 설명 없이 감상도 해보고- 이렇게 이때까지 혼자서 박물관,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혼자서 끙끙댔던 걸 안 하니 허전하기도 했다. 만족도는 50%. 가격이 세서 대단한 설명을 기대했는데 퀄리티는 그냥 그랬고 작품 선정도 아쉬웠다. 식견이 생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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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191211 #59 인상, 인상, 인상100일 글쓰기 2019. 12. 12. 03:29
#59 인상, 인상, 인상 제목이 이따위인 이유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인상주의 작품을 질릴 정도로 보고 왔기 때문이다. 아, 정말 좋았다. 중세시대 종교화와 사실주의 그림에는 관심이 없고 현대미술과 인상파 그림들을 좋아한다. 그런 나에게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죄다 가지고 깔끔하게 아카이빙 해놓은 오르세 미술관의 5층은 만족스러웠다. 일단, 르누아르. 르누아르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억이 있는데, 어렸을 때 가족끼리 한국에서 하는 특별 전시회를 갔다. 주제가 뭐였는지는 당연히 기억나지 않지만, 예쁜 여자아이의 그림에 집착하고는 했던 어린 나는 르누아르 그림에 반해서 홀로그램 책갈피를 사서 소중히 보관했다. 이 두 그림의. 새삼스럽지만 르누아르처럼 소녀를 아름답게 그리는 화가도 없을 것이다. 오늘 실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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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191210 #58 여행의 의미100일 글쓰기 2019. 12. 11. 06:48
#58 여행의 의미 1. 아침 일찍부터 패키지 투어를 갔다 왔다. 이번에도 혼자 온 사람이 나 혼자여서 여러모로 불편하면 어떡하지, 했는데 다행히 혼자 온 사람들이 꽤 돼서 밥을 먹을 때나 자유시간이 주어질 때나 집에 돌아올 때나 뻘쭘하지 않고 좋았다. 가장 패키지 투어를 신청한 보람이 있었다고 느끼는 것은 몽마르트 언덕. 하나의 지역이 박물관 같았다. 각 장소가 예술가의 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흥미로웠고, 좋아하는 화가의 이름이 여기저기 튀어나와서 반가웠고(모딜리아니!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어서 반가웠다!) 한 도시가 이렇게 많고 유명한 예술가들의 보금자리였다는 사실이 멋있었다. 그리고 그 유적지를 훼손시키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해내는 데 성공한 프랑스인들에게 경이로움을 느꼈다. 한 번 더 가볼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