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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191211 #59 인상, 인상, 인상100일 글쓰기 2019. 12. 12. 03:29
#59
인상, 인상, 인상
제목이 이따위인 이유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인상주의 작품을 질릴 정도로 보고 왔기 때문이다. 아, 정말 좋았다. 중세시대 종교화와 사실주의 그림에는 관심이 없고 현대미술과 인상파 그림들을 좋아한다. 그런 나에게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죄다 가지고 깔끔하게 아카이빙 해놓은 오르세 미술관의 5층은 만족스러웠다.
일단, 르누아르. 르누아르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억이 있는데, 어렸을 때 가족끼리 한국에서 하는 특별 전시회를 갔다. 주제가 뭐였는지는 당연히 기억나지 않지만, 예쁜 여자아이의 그림에 집착하고는 했던 어린 나는 르누아르 그림에 반해서 홀로그램 책갈피를 사서 소중히 보관했다. 이 두 그림의.
새삼스럽지만 르누아르처럼 소녀를 아름답게 그리는 화가도 없을 것이다. 오늘 실물로 그림을 보고 또 깨달았다. 속눈썹과 솜털, 발그레한 뺨과 눈. (르누아르가 그린 인물의 결정적인 특징은 눈이다! 눈을 정말 예쁘게 그림!!!) 머릿결까지. 두 작품을 보고 나서 실제로 박물관에서 그림을 보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해서 벅차올랐다.
모네의 수련, 성당 그림. 성당그림은 한 점이 따로 떨어져서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특별전에서 전시되고 있는 것을 본 기억이 있는데, 이렇게 여러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연작이었는지는 오늘 처음 알았다. 오랑주리에서 볼 수련 연작을 엄청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묘하게 가슴속에 남은 것은, 0층에서 본 모네가 시력을 잃어갈 즈음에 그린 정체모를 붉은 그림.
그리고 드디어, 반 고흐. 사실 오늘 반 고흐의 작품을 못 볼 각오를 했다. 어제 패키지 투어 중에 가이드 분께 오르세 미술관을 정상적으로 구경하는 게 가능할지 물어봤었는데, 직원이 많이 출근을 안해서 반 고흐전처럼 감시 직원이 필요한 곳은 못 볼 수도 있다는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늘은 정상적인 운영을 하는 날이었다! 혼자 다니면서 쓸데없이 감수성이 풍부해진 나는, 파리에서 그린 (덜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서 가슴이 찡해오는 것을 느꼈다. 이 문구를 유난히 자주 쓰는 것 같은데, 명화는 실제로 봐야 느낄 수 있는 것이 확실히 있다. 휘몰아치는 물감과 몰려있는 사람들, 그리고 닥터 후에서 반 고흐가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오르세 미술관을 둘러보며 울음을 참는 장면이 겹쳐지며 기분이 묘했다. 한 사람의 불행한 인생과 그 불행한 인생 때문에 오히려 더 주목받는 그의 말년작들. 예술이란 무엇일까? 그가 자신의 방을 그리며 색깔을 강조했다고 여동생에게 편지를 쓴 것이라든가, 죽기 직전 절친했던 의사를 그려준 초상화라든가. 자잘한 명작들이 연달아있었고 나는 몇 번이고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질문에 대한 답이라도 찾겠다는 듯이.
이 외에도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들이 많았지만 내가 계속 기억하고 싶은 것들은 이 정도다.
0층에는 사실주의 작품들과 상징주의 작품들이 가득했고, 역시 내 관심사가 아니여서 휙휙 둘러봤는데 괜찮은 작가들을 몇 명 찾아냈다! 안타까운 것은 다리가 너무 아파서 드가의 특별전을 지나치게 대충 봤다는 것.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로댕 미술관을 향했다. 오디오가이드가 6유로였는데, 어차피 몸상태 때문에 집중력도 바닥이 나서 설명을 제대로 들을 자신이 없었다. 따라서 그냥 패스하고 적당한 속도로 둘러봄. 여름에 다시 와보고 싶다! 주요 작품이 야외 정원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겨울인지라 나무와 꽃들이 앙상해서 경치가 초라했다. 조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오르세 미술관의 복도에 나란히 배열되어있던 조각들을 보고는 약간의 흥미가 생겼다. 배경지식을 쌓으면 조각을 볼 때 특별한 기분이 들까?
파리에는 amorino라고 장미꽃 모양으로 퍼주는 것으로 유명한 아이스크림집이 있는데, 너무 추워서 도저히 아이스크림을 먹을 자신이 없어서 먹으려고 했던 것을 포기했다. 그대신 저장해놓았던 빵집 하나를 찾아가 애플파이와 정체불명의 페스츄리 하나를 샀는데, 방금 먹은 애플파이는 적당히 맛있었음. 아 따뜻하면 더 맛있었을 것 같은데. 아쉬워라. 내일은 에끌레어와 타르트 등 단 걸 잔뜩 사 먹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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