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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191212 #60 제목없음100일 글쓰기 2019. 12. 13. 06:16
#60
제목 없음
딱히 쓸 글을 상징하는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뭐, 최근에는 주제를 정해놓고 백일 글쓰기를 해내는 일도 드물었으며 제목을 지어봤자 그날 하루를 요약하는 단어의 나열뿐이긴 하였으나 오늘은 그마저도 생각나지 않는다. 일단 쓰겠다.
루브르 박물관은 정말 크고 컸다. 예약한 투어의 가이드 뒷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고, 유명한 작품을 봤다. 편하긴 편했다. 이게 왜 유명한지 심혈을 기울여서 혼자 작품을 분석해보고, 영어 오디오를 해석해보고, 아무런 설명 없이 감상도 해보고- 이렇게 이때까지 혼자서 박물관,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혼자서 끙끙댔던 걸 안 하니 허전하기도 했다. 만족도는 50%. 가격이 세서 대단한 설명을 기대했는데 퀄리티는 그냥 그랬고 작품 선정도 아쉬웠다. 식견이 생기면 다시 한번 와 볼 것이다.
퐁피두 센터! 숙소 바로 근처여서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일부러 거대한 루브르 박물관을 돌아다녀서 지쳤을 때 즈음 가볍게 보기 좋도록 오늘 보기로 계획을 짰다. 테이트 모던의 프랑스판, 같은 느낌이었는데 훨씬 더 근사한 작품들이 가득했고 아름다웠다. 놀라웠던 점은 영구 전시품들의 라인업. 피카소, 브라크, 마티스, 샤갈에다가 몬드리안과 칸딘스키까지! 어제 미술관을 연달아 돌아다니며 얻었던 결론으로 퐁피두 센터를 들르기 전에 스타벅스에서 휴식을 취했는데, 현명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지치지 않은 상태로 신나게 전시관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마티스의 대표 작품을 드디어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칸딘스키의 작품들이 빼곡하게 (벽에도 가장 충실한 컬렉션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 조로 적혀있었다) 들어선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나는 칸딘스키를 정말 좋아하는데(유치한 이유여서 왜인지는 딱히 적고 싶지 않다) 한 그림만 5분 넘게 들여다보기도 하고, 즐거웠다. 그밖에 소득은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근현대 작가들을 알 수 있었다는 점.
음, 조금 유치하지만 나만의 미술관을 즐기는 방법은 이러하다. 1. 일단 아무런 정보 없이 그림을 들여다본다.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몇 초만에 판단해버린다. 2. 일단 어떻게 판단했든 옆에 적혀있는 작품의 상세 설명을 들여다보기는 한다.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이었는데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다 -> 다시 한번 그림을 들여다보고 넘어간다. 3. 마음에 드는 작품은 설명을 머리에 새기고 다시한번 들여다본다. 멍하니 그림을 살피면서 왜 이 그림이 마음에 드는지 이유를 나열해 본다: 색감, 스케치 방식, 물감을 사용한 방식, 소재 등등. 4. 특별히 마음에 드는 작품은 공책에다 적어놓는다. 작가와 작품 제목, 제작연도. 공책에 적으면서 나만의 컬렉션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더욱 신난다. 5. 왠지 이건 사진으로 남겨놓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몇 개 있다. 찰칵 소리 때문에 남들의 감상을 방해할까 봐 사진을 찍어대는 걸 자제하는 편인데, 정말 유명한 작품이라서 이걸 직접 보았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기록해야겠다든지, 충격적으로 아름다워서 꼭 찍어보고 싶다든지, 너무 안 유명한 듯한 작품이라서 제목을 기록해두는 것만으로는 다시 찾기 힘들겠다든지. 총 세 가지 경우가 그러하다. 그러면 눈치를 보지 않고 찍는다. (웬만한 요즘 미술관들, 특히 현대 미술관들은 사진을 찍는 행위를 딱히 막지 않는다.) 필요한 경우 영상으로 찍기도 한다.
퐁피두 센터의 가장 꼭대기 층은 현대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뮤지엄 패스가 있더라도 따로 돈을 내야 돼서 굳이 들르지는 않았는데, 기념품샵에 늘어져있는 해당 작가의 굿즈를 보니 한번 들려볼 걸 싶더라. 다음에 파리를 올 때는 꼭 개인전도 찾아가 볼 것이다. 그 밑의 층은 위에 주르륵 적어놓은 유명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늘어져있고, 그 밑의 층은 현대 미술로 가득했다.
기념품샵에 예쁜 게 너무 많았다! 자석 하나와 건축가용 자(이건 정말 사야겠다 싶어서 바로 계산해버렸다) 두 개로 타협을 봤지만 눈에 아른거리는 것들이 꽤 있다. 그리고 나는 물건을 고를 때 꽤 까다롭기 때문에 이건 정말 드문 현상이라는 걸 굳이 강조해 본다. 그 정도로 준수한 디자인의 물건이 많았다는 뜻이다. 대신 가격이 사악했음. 빈티지한 일러스트의 카드게임 세트, 공책, 안경집, 가위...... 돈을 열심히 벌어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딱 일정이 두 개였는데도 하루가 금방 끝나버렸다. 보람차다.
뜬금없지만 난 글을 정말 못 쓴다. 따로 문체라고 할 것도 없고 어휘력도 심히 부족해서 한 문단에 같은 단어가 몇 번이나 반복되고는 한다. 어울리지 않게 반성 조로 글이 이어지는 것은 방금 전에 다른 사람의 글을 읽다가 내 글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겠지. 글을 많이 써보지도 않고, 글을 읽으면서 분석도 안 해보지, 전문적인 교육도 안 받아봤고, 퇴고는 커녕 집중해서 글을 쓰는 편도 아니다(지금 이 글도 음악을 들으며 침대에 드러누워서 쓰고 있다). 다른 사람이 읽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자기만족 용도의 글이니 퀄리티가 굳이 좋아야 할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 역시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겠다. 분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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