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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191209 #57 파업100일 글쓰기 2019. 12. 10. 04:57
#57
파업
나, 다니엘 블레이크 파업파업파업
자기 전에 트위터에서 파리에 파업이 발생했다는 글을 봤다. 헐, 지하철 못 쓰는 건가? 이래저래 피곤하겠네, 이런 막연한 생각을 하다가 잤는데 그게 나한테 이렇게 큰 불편을 초래할지는 몰랐지.
평소대로 시간에 맞춰서 체크아웃을 했고, 기차역에 도착했다. 어제처럼 기차역은 한산했다. 티켓을 받고, 플랫폼 안으로 들어서다가 직원에게 이 기차를 타려면 어느 플랫폼에 서있어야 하는지 물었다. 그 직원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는데, 그 옆에서 멀뚱히 보던 다른 직원 하나가 내 표를 가져가서 목적지를 발음해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스트라이크, Strike. 파업 때문에 기차가 운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에에엥?
헐레벌떡 인포메이션 센터에 달려가 티켓을 보여주었더니 똑같은 대답이 되돌아왔다. 파업 때문에 기차는 운행하지 않고, 중간에 경유를 한 번 하는 다른 경로를 알려주겠다는 거였다. 정신없이 추천해준 경로를 들여다봤는데 문제는 두 가지였다. 1. 여기서 기차표를 사려면 필히 어제처럼 기계를 이용해야 할 텐데 망할 놈의 기계는 내 카드를 인식하지 못한다. 2. 이 기차 시간 대로라면 파리에 여덟 시에 도착한다. (요즘 내 생채 시계로는 한밤중이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거금을 들여 비행기표를 샀다. 물론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지만. 너무 막막해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는데, 어제처럼 주문을 외웠다. 고작 이런 일로 내 하루를 망칠 수는 없다. 망칠 수는 없다.
한참 전에 샀더라면 몇만 원에 가뿐히 구할 수 있었을 비행기 티켓은 떠나기 세네 시간 전에 사려니 다섯 배의 가격을 불러댔다.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막상 공항을 찾아가니 너무 빨리 와서 짐을 부칠 수 있는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공항 라운지의 의자에 앉아서 노트북을 했다. 으으윽. 한 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 갇혀 있다가 택시를 타고 겨우겨우 민박집에 찾아와 침대에 쭈그려 앉아서 타자를 치고 있다.
멍청한 소리 하기
아 씨발, 파업이고 뭐고 내 알바가 아니다. 너네 노동환경이 아무리 열악해봤자 한국만 하겠냐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이게 진짜 빻은 소리인 건 나도 알고 있다. 근데 왜 하필 내가 거금을 들여서 파리에 걸음을 한 순간 파업을 하냔 말이다. 나는 오르세 미술관을 가야 하고, 지하철을 타야 한단 말이다......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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