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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191207 #55 바다가 보이는 마을100일 글쓰기 2019. 12. 8. 04:35
#55
바다가 보이는 마을
니스
나는 왜 니스에 오기로 결정한 걸까? 결코 후회 조의 말투가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적어본 것이다. 언니에게서 파리는 춥지 않냐는 연락이 왔고, 나는 파리가 아니라 니스에 있다고 답장했다. 니스는 참고로 따뜻하다. 니스? 거기가 어디야? 휴양지로, 바다로, 예쁜 도시로 유명한 프랑스 남부의 한 지역이라고 대답하려다가 새삼스럽게 니스는 그렇게 유명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니스라는 도시를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왜 이곳을 오기로 한 거지? 신기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바르셀로나보다 살짝 북쪽에 있는 이 도시는 따뜻하다. 바닷바람이 직통으로 불어오고, 12월이 다 되었음에도. 햇빛이 쨍쨍하고 사람들은 여유롭다.
하루에 미술관을 세 개나!
니스에는 자잘한 미술관이 꽤 많은데, 그중 세 개를 골라 모두 들렀다.
일단 가장 먼저 찾아갔던 샤갈 미술관! 이 곳에 대해 한 시간은 떠들 수 있다! (물론 과장이다.) 미술 혹은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는 입장이 무료라는 후기를 보고 돈이 안 나가겠군, 하며 국제학생증을 티켓 판매소 직원에게 내밀었는데 직원은 어디에서 공부하는 지를 물었다. Korea, 라며 떨떠름하게 물어보자 가차 없이 학생요금을 요구했다. 뭐지? 투덜거리며 미술관을 입장하는데, 첫 번째 전시관을 들어가자마자 불쾌한 기억을 뒷전으로 두고 탄성을 질렀던 것 같다. 샤갈의 작품은 꼭 직접, 실제 크기로 실제 그림을 봐야 한다. 말도 안 되게 어울리지도 않을 법한 원색 여러 개를 천연덕스럽게 붙여놓는데, 그게 미친 듯이 아름답다. 색채의 마술사는 오글거리기만 한 호칭이 아니다. 진짜 마술이라도 부린 것 같다. 한 전시관은 거대한 종교화를 가득 가지고 있었는데, 그 전시관만 삼십 분을 반복해서 돌아보았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냥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떤 한 부분의 색깔이 여러 색의 정교한 조합으로 빛나고 있지를 않나, 가까이서 봤을 때는 그냥 무난한 정도의 색 조합이라고 생각했던 작품이 멀리서 보니 환상적이 지를 않나.(내 비루한 어휘 구사력에 나도 답답하다) 신나게 그림을 들여다보고 사용한 색깔을 혼자서 분석하고. 재밌었다. 미술관 자체도 저번에 들렸던 미로 미술관처럼 화가의 입김이 들어간 또 하나의 작품이었고, 건물 자체를 둘러보는 것도 재밌었다.
마티스 미술관은 별 기대 없이 들어갔고, 국제 학생증 덕에 공짜로 둘러볼 수 있었지만 공짜가 아니었다면 시간낭비라고 여겼을 것 같다. 별로였다는 소리다. 대단한 작품도 별로 없고, 설명은 모두 불어로 적혀 있고. 딱히 할 말 없음.
니스 현대 미술관은 초반에는 지루하게 둘러봤는데(현대 미술은 경험상 설명이 자세히 붙어있지 않으면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건물 위층에 있는 전시 몇 개는 꽤 흥미로웠다. 기억에 남는 건 Niki de saint phalle, Jean Tinguely, Yves Klein. 현대 미술관 상층부에서 볼 수 있는 니스의 전경도 또하나의 볼거리. 역시 국제 학생증을 가지고 있으면 무료이다.
전형적인 P 인간의 여행
계획적이지 못하다. 계획을 세워놓으면 내 행동에 제약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계획을 세우는 게 귀찮다. 이번 여행은 그래도 45일을 하는데, 그래도 계획을 세워놓기는 해야지, 하고 마음만 먹었다. 비행기표와 기차표, 숙소 예약만 해놓고 그냥 떠났다. 나는 이게 나름 괜찮다. 전날에 뭘 할지 계획을 대강 짜두고, 가격 및 이동경로를 알아본다. 메모장에 옮겨적고 잔다... 그게 다다.
미술관 투어를 다 마치고 즉흥적으로 구글 검색을 통해 괜찮은 중국집을 찾아내서 거기서 애매한 점심 식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마세나 광장을 들러보고, 바닷가를 걸었다. 원래 유명한 꽃시장에도 들르는 게 계획 중 하나였는데 생각보다 일찍 문을 닫아서 못 갔다.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들러봐야겠다.
바닷가는 예뻤다. 나는 바닷가 앞에서 또, 나는 이 앞에서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하나, 라는 쓸데없는 생각으로 살짝 심란해졌다. 특이하게 바닷가에는 모래사장이 없고 크고 작은 자갈이 가득했는데, 그곳에 일단 냅다 앉았다. 폰을 만졌다. SNS를 보고, 검색도 해보고. 그러다가 폰을 그만 만지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바닷바람을 맞았다.
어이없는 이야기 하나
숙소 구조가 진짜 특이하다. 화장실이 습식인데, 게다가 화장실이 침대가 있는 방보다 높이가 높고, 문의 밑부분이 뚫려있다. 환장할 부분은 하수구 구멍이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즉, 샤워를 하다 보면 물이 화장실 바닥에 고이다가 화장실 문 밑으로 흘러나가 일반 방의 바닥을 다 적셔버린다. 어제 그걸 발견하고 어이가 없었는데, (다행히 어제는 샤워를 좀 짧게 해서 일반 방바닥이 살짝만 젖는 정도였다) 오늘은 그 사실을 까먹고 샤워를 오래 했다가 물바다를 만들었다. 시발. 수건으로 바닥을 닦고 그걸 짜고. 중세시대 신데렐라처럼 그거 뒤처리만 거의 반시간을 하다가 지금은 포기하고 침대에 드러누움. 어이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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