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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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두 개의 단상100일 글쓰기 2020. 1. 10. 23:30
#76 두 개의 단상 1. 허무하지 않게 쉬기 오늘도 친구를 만났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봤다. 정말 재밌다. 어릴 적 도서관 구석에서 찾아내 조심조심 몇 권씩 빌려 읽던 엘러리 퀸 시리즈가 생각났다. 요즘 영화 치고는 드물게 '착한 마음씨'를 강조하는 캐릭터들도 나쁘지 않았다. 벼르고 있던 러닝화도 사버렸다. 그제도 같은 친구를 만났고, 어제는 드라마를 계속 보다가 책 한권을 끝냈다. 언니와 또 다른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 어제 다짐한 대로 마냥 시간을 버리고 괴로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의식적으로 자제하고 있다. 허무하지 않게 쉬는 게 이런 기분일까. 약속이 띄엄띄엄 잡혀있고, 돈은 사람과 만날 때만 쓰고 있고,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홍수 속에서 헤매지 않고 즐거운 것만 딱딱 골라서 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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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보람 있는 대화란100일 글쓰기 2020. 1. 9. 01:43
#74 보람 있는 대화란 한국으로 돌아온 뒤 처음으로 친구 C와 약속을 잡아서 만남을 가졌다. 고등학교 때 반 년동안 같은 반 생활을 한 친구이다. 스무 살의 반년은 그렇게 허무하고 짧게 지나갔는데, 열일곱의 반년은 어쩜 생기 넘치고 길고 길었을까. C는 굉장히 솔직한 친구이다. 대학도, 있는 위치도, 관심사도 무척이나 달라진(그렇지만 생각해보면 고등학생때도 관심사는 도저히 겹치지가 않았다) 우리는 예상외로 대화를 보람 있게 있어나갔다. 열일곱열여덟 때도 그러했듯이 우리는 헛바람에 차있지만 진지하고 울적한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었고, C는 헤어질 때 술에 살짝 취해서 신나게 말했다. 걱정했는데 너무 재밌었다고. 정말로 진실한 친구 사이에서만 보람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 보람 있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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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미친 듯이 좋아하고 싶어100일 글쓰기 2020. 1. 8. 01:18
#73 미친 듯이 좋아하고 싶어 뭔가를 정말로 좋아한다는 감정이 슬슬 가물가물해진다. 먼저 생각나는 것은 아이돌. 이 주제에 관해서 공감을 해주는 또래 여성은 정확히 반밖에 안되는데(나머지는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를 못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인터넷 집착이 심각했고 현실을 도피할 수단이 급급했던 나는 아직까지 탈케이팝을 못하고 있다. 한심한 걸로 이러쿵저러쿵 이십 대 청춘에게 욕을 퍼붓고 현실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주제로 미친 듯이 논쟁을 벌이고 하는 꼬락서니가 보기 짜증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떻게든 탈케이팝을 해야지 하면서 다시 한번 트위터로 돌아가 떡밥을 챙겨보고, 스밍을 돌리고, 내 새끼가 제대로 된 활동을 보장받았으면 하는 넋두리를 늘어놓고, 어쩔 수 없는 아이돌 빠순이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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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이탈리아 4: 로마100일 글쓰기 2020. 1. 3. 22:36
#72 이탈리아 4: 로마 1. 로마로 향하는 티켓은 싸지만 이동시간이 꽤 걸리는 선택지 1번이 있었고, 비싸지만 바로 도착하는 선택지 2번이 있었다. 1번이 거의 반값이라 나는 1번을 계속 밀었지만 A는 빨리 도착해야 오늘 관광을 할 수 있다며 2번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2번을 선택했다. 카드를 기계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티켓을 사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도 이번 에어비앤비 숙소는 난방이 안돼서 춥다는 것 외에는 단점이 거의 없을 정도로 괜찮은 곳이었고, 이날 부득부득 방문한 곳도 멋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가기로 한 곳은 국립현대미술관이었다. 로마 현대미술관은 구글 지도에 총두 개가 있는데, 국립이 붙어있는 곳이 우리가 간 곳이고, 로마가 붙어있고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다는 부연설명이 있는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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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이탈리아 3: 피렌체100일 글쓰기 2020. 1. 3. 22:33
#71 이탈리아 3: 피렌체 1. 일단 일반적인 꼰대처럼 또 다른 조언을 하겠다. 제에에에발 관광지 근처의 숙소를 잡아라. 지하철이면 몰라도, 기차로 한 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의 숙소는 절대 아니다. 아무래도 구글 지도에서 나왔던 기차 로고를 지하철로 착각한 것 같은데 미친 짓이었다. 에어비앤비로 잡은 숙소는 피렌체 중심가에서 기차로 한시간을 가야 나오는 교외의 아파트였다. 에어비앤비 사이트에서 집주인이 열심히 어필했던 점은 주변 경치가 정말로 예쁘다는 것이었는데 창문은 제대로 안 열리는 데다가 해가 뜨기 전 아침에 출발하고 해가 진 후 밤에 도착을 하는 일정만 반복되어서 구경도 못했다. 침대도 하나밖에 없었다. 처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게다가 그 한 시간을 이동하는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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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이탈리아 2: 베네치아100일 글쓰기 2020. 1. 3. 22:30
#70 이탈리아 2: 베네치아 1. 베네치아는 밤의 치안이 정말 안 좋다고 한다. 밀라노를 오후 늦게까지 구경하고 베네치아로 이동할 생각으로 꽤 늦은 시간의 기차표를 예약해놓았는데 A의 걱정 때문에 이른 시간의 기차표를 다시 샀다. 베네치아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의 양은 적었지만 바람이 정말 강해서 우산이 뒤집히고, 손에 들고 있던 엽서와 자석이 가득 담긴 에코백이 젖고, 아 힘들었다. 가자마자 3일짜리 교통권을 샀다. 숙소는 꽤나 골목진 곳에 있어서 찾아가는 게 벅찼다. 저녁을 못 먹어서 근처에서 슈퍼마켓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찾아가는 길에 괜찮은 중국 음식점을 발견해서 가성비 넘치는 저녁을 먹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파스타 테이크아웃 전문점이었는데, 적당한 크기의 박스에 한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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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이탈리아 1: 밀라노100일 글쓰기 2020. 1. 3. 22:27
#69 이탈리아 1: 밀라노 1. 일단 여러 나라를 한꺼번에 여행할 때 주의할 점을 감히 조언해 보겠다. 숙소를 잡기 전에 교통편을 먼저 알아봐라.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건너갈 때 야간열차를 타려고 검색을 하다가, 한심하게도 비효율적인 수단을 선택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뮌헨에서 출발한 열차가 베니스에 도착하면, 베니스에서 밀라노로 가는 짧은 열차로 다시 환승을 해야 했는데 웃기게도 밀라노의 다음 여행지가 베니스였다. 이미 친구와 내가 묵을 이탈리아의 호텔과 기차표는 다 결제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밀라노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음, 그 전에 야간열차를 탑승해본 후기를 짧게 적어보자면 불편하고 비싸고 찝찝하다. 웬만하면 타지 말라. 표는 웬만한 호스텔의 1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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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191218 #67 강제 모바일 디톡스100일 글쓰기 2019. 12. 22. 08:00
#67 강제 모바일 디톡스 한동안 100일 글쓰기를 못했다. 뭐, 아예 할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굳이 둘러대 보겠다. 아이폰을 도둑맞았기 때문이다. 혼자 다닐때는 사소한 물건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은 채 안전하게 한 달 동안이나 돌아다녔는데, 친구가 합류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서 무려 폰을 도둑맞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오히려 일행이 생겨서 긴장을 풀었기 때문에 폰을 손에도 들지 않고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고, 소매치기에게 틈을 보였다. 아, 이탈리아 거지들은 진짜 사납고 무섭다. 막상 폰을 도둑맞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엥, 폰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거지. 막연히 폰이 없으면 못 하게 될 것들을 나열해보았다. 일단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