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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김봉석서재 2019. 11. 6. 23:34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작가: 김봉석
출판사: 북극곰
인생을 살아가고 선택을 내릴 때 모든 것이 원인이 있고 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삶은 우연과 알 수 없는 이끌림이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왜 이때 이렇게 행동했는가, 이런 선택을 하였는가를 따져보기 시작하고 그 원인을 좇는 것은 가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특이하게도 그 원인의 대부분이 대중문화인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는 평론가들의 인생이 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대중문화-영화와 음악, 만화와 소설-에 심취한 삶을 산 저자는 자신이 겪었던 일과 했던 생각을 접했던 대중문화와 연결 지어 글을 썼다. 게을러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만 때리는 유년시절을 보냈던 나와 달리 수많은 영화를 보고, 만화를 읽으며 십 대를 보냈다니 부러웠다. 내성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문화에 파묻혀 살았던 또 다른 한 사람으로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그렇게 칼을 숨겨두고 2층에서 내려온 후, 나는 살아갔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조금 더 보자고 생각했다.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내가 존재하는 지금 이곳이 대체 어디인지 들여다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연했다. 나에게는 스승이 없었고, 조언해 줄 그 누구도 없었다. 찾을 생각도 없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고,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웠다. 일종의 대인 공포증이었다. pg. 89
하지만 저자는 인생을 바꾼 커다란 경험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앞에 닥친 일에 부딪혀 보고, 현재를 버티고, 옛날과 같이 수많은 이야기들을, 문화들을 접하다보니 현실에서 허우적대면서 사는 법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서른이 넘은 시간부터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서서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 문장들이 위로가 되었다.
평론가가 영화에 대해서, 책에 대해서, 만화에 대해서 쓴 책을 읽다 보면은 어떻게든 내가 취해야 할 작품들을 받아써야겠다는 강박증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포기한 상태다. 나는 여전히 게으르고,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겠다는 걸 알아서이다. 따라서 이 책에 나온 영화와 만화는 모르는 작품이라도 별다른 메모를 하지 않고 흐음, 하고 줄거리와 특징을 읽었다. 그러니 작가의 삶에 특히 큰 영향을 끼친 작품들 (대부, 황야에서 등등)에 대한 호기심은 생겼다. 다시 한번 훑고 메모를 한 다음에 일정 이상 감상해보고, 책을 재독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홍콩영화와 8, 9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남모를 동경이 있다.)
나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이렇게 한가득 쓸 수 있는 중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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