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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이탈리아 4: 로마100일 글쓰기 2020. 1. 3. 22:36
#72
이탈리아 4: 로마
1.
로마로 향하는 티켓은 싸지만 이동시간이 꽤 걸리는 선택지 1번이 있었고, 비싸지만 바로 도착하는 선택지 2번이 있었다. 1번이 거의 반값이라 나는 1번을 계속 밀었지만 A는 빨리 도착해야 오늘 관광을 할 수 있다며 2번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2번을 선택했다. 카드를 기계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티켓을 사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도 이번 에어비앤비 숙소는 난방이 안돼서 춥다는 것 외에는 단점이 거의 없을 정도로 괜찮은 곳이었고, 이날 부득부득 방문한 곳도 멋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가기로 한 곳은 국립현대미술관이었다. 로마 현대미술관은 구글 지도에 총두 개가 있는데, 국립이 붙어있는 곳이 우리가 간 곳이고, 로마가 붙어있고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다는 부연설명이 있는 곳이 다른 한 곳이다. 건축학도로써 후자를 방문하는 게 당연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애초에 염두에 두었던 곳이 전자라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빠르게 향했다. 가기 전에 근처 식당에서 마르게리따 피자와 홈메이드 파스타를 먹었는데, 싸고 맛있었다!
미술관은 커다란 공원의 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파아란 하늘과 공원의 길쭉한 나무들, 느긋하게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과 햇빛을 반사해 반짝거리는 자그만한 호수를 천천히 눈에 담으며 지나갔다. 미술관을 가려면 공원을 쭉 가로질러야 했는데 걸어서 가기로 결정한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 순간을 어떻게든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에 필름 카메라 하나를 다 썼다.
다행히도 미술관은 근사했다. ‘근사하다’ 정도의 형용사로 묘사할 정도가 아니라 내 취향에 무서울 정도로 들어맞는 작품들이 계속해서 나왔는데 작품만 아름다울 뿐만이 아니라, 전시관 하나하나가 큐레이터의 관심 속에 정성스럽게 꾸며진것이 바로 느껴져서 즐거웠다. 한 전시관에 일반 회화작품만 있던 것이 아니라 시대를 넘나드는 조각 작품이 한 두 개씩 꼭 가운데에 진열되어 있었고, 일정한 색감으로 방이 가득 찬 것을 보는 것도 미적으로 만족스러웠다(aesthetically pleasing, 을 의도한 건데 막상 한국어로 번역해놓으니까 어색하다)
2, 3.
다음 이틀 동안은 신청해놓은 투어를 부지런히 다녔다. 유로 자전거 나라의 바티칸 투어와 로마 버스 투어. 이번 유럽 여행 동안 여러 투어를 신청해보았지만 이 두 투어처럼 상세하고 귀에 잘 들어오는 설명을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무교인지라 성경과 카톨릭 문화가 어색한 나 같은 관광객들을 배려했는지 벽에 새겨진 인물화 하나하나, 천장의 문양 하나하나 어린 시절 옛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그날의 공기를, 눈에 보이는 몇 백 년 전의 유적을, 정보를 어떻게든 뇌에 새기려고 정신을 집중했다. A와 서로 폰을 맡기며 사진을 한참 찍었다. 가끔은 패키지 투어가 떠먹여 주는 여행이라는 어이없는 핑계로 혼자 막연히 돌아다니는 것만을 고집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많은 이야기와 긴 역사가 담겨있는 도시에서 패키지 투어는 훌륭한 선택이었다.
4, 5.
그러고도 이틀이 남았다! 왠만한 주요 유적지들은 그 전 두날의 패키지 투어로 한번씩 들려본 후였고, 젤라또 맛집을 일단 돌아다녀보기도 했다. 결국 이틀을 꼬박 들여서 돌아다닌 곳은 모두 스페인 광장 주변의 쇼핑거리였는데, 여행의 막바지라서,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바로 전 도시까지도 엄두도 못냈던 쇼핑을 신나게 했다. 부모님께 드릴 향수, 장갑, 넥타이 부터 시작해서 나 자신에게 주는 연말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싸게 사들인 가죽 가방(인조가죽이라고 실물을 본 어머니는 못마땅해하셨지만 한국에서 보기 힘든 귀여운 디자인과 막 쓸 수 있을 것 같은 괜찮은 가격 덕분에 나는 아직까지 아끼고 있다), 디즈니 샵에서 산 노트와 머그컵까지! A는 더욱 신나게 이런저런 것들을 사들였고, 잔뜩 사들인 물건을 어떻게든 짐가방에 쑤셔넣으려고 낑낑대면서 나의 유럽여행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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