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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191013 #8 환절기100일 글쓰기 2019. 10. 15. 02:02
#8
환절기
누군가가 환절기에 대한 글을 썼더라. '환절기'라는 단어는 매우 익숙했지만 그 익숙함은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문장을 죽어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글을 읽으면서 어리둥절했다. 뭐? 봄에 환절기가 있다고? 환절기는 겨울 되기 직전 아니야? 환절기는 계절이 바뀌는 시간을 지칭하는 단어였던 걸 20년 인생 처음 알게 된 것이다.
환절기1 (換節期) [환ː절기]
[명사] 철이 바뀌는 시기.
그렇다면 일 년에 환절기는 여러 번 있을 것이고, 크게 따지자면 두 번 있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뜨거워지는 늦봄과 추워지는 늦가을. 하지만 제대로 된 뜻을 알았음에도 '환절기'란 나에게는 여전히 가을 느낌이다. 오늘 내가 쓰는 '환절기'는 딱, 지금쯤인 가을 중반을 가리킨다. 얇은 코트를 입지만 목도리까지 두르지는 않는 시기.
환절기에는 감정이 오락가락한다. 지금쯤 되는 시기에는 차가워진 바람을 느끼며 마냥 행복해하기도 하고, 더 추워질 공기를 생각하며 의미없이 지나가버린 한 해를 생각하며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래도 기본적인 기분은 간질간질한 작은 기쁨이다. 그래서 나는 환절기와 환절기에 찾아오는 감정, 생각, 경험을 아낀다.
게다가 환절기라는 단어를 보고 생각나는 것들도 다 내가 아끼는 것들이다. 가을색, 이라는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는 따뜻한 색감의 얇은 코트, 가디건, 니트. 거리에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하는 붕어빵 가판대들. 베레모와 빵모자. 따뜻한 밀크티와 카페라떼. 낙엽으로 화려하게 물든 산. 가죽 워커. 손가락만 드러나는 장갑.올해 초에 이상한 꿈을 꾼 적이 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사실적인 꿈이었다. 때는 가을이었다. 단풍이 든 가로수들로 거리는 따뜻해 보였고, 나는 헐렁한 갈색 코트를 입고 낯선 도시의 인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나보다 키가 훨씬 더 컸고, 나는 그를 보자마자 품에 안겨들었다. 같이 팔짱을 끼고 호텔까지 걷는 길이 유난히 길었다. 꿈치고는 너무 선명해서 올해 가을을 예견하는 비전인가, 하고 말도 안 되는 추측도 해봤지만 아직도 저는 연애는커녕 이성과 마주치는 일도 없었던 가련한 히키코모리 상태의 인간인데요 뭘 하하...
어쨌든 이러한 꿈들이 마구마구 찾아오고, 얇고 달콤한 상상들이 멋대로 부풀어오르는 지금. 지금의 바람, 냄새, 차가움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따라서 당분간 행복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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