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일 글쓰기: 191204 #52 비에 흠뻑 젖은 채100일 글쓰기 2019. 12. 6. 21:40
#52
비에 흠뻑 젖은 채
비가 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이런저런 꿈을 꿨고 일어났을 때 비가 내리는 것을 확인하고는 절망했다. 오늘은 해변과 전망대 등 야외를 주로 돌아다닐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이 아니라 유럽이니, 영국에서 경험한 바가 있듯이 강수량과 방향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을 거라는 긍정적인 예측을 하고 평소에 비상으로 들고 다니는 단 우산을 들고 길을 나섰다.
추천받은 브런치집은 그냥 그랬다. 그래도 현지 가게에 찾아가서 혼자 여유롭게 브런치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어른이 된 나 자신이 뿌듯했다. 자의식 과잉이다. 바르셀로나 현대 미술관은 적당히 좋았다. 음, 역시 나는 현대미술관을 돌아다니는 게 성미에 맞는 것 같다. 테이트 모던에서 스쳐 지나간 아티스트를 다시 마주쳐서 반갑기도 했고, 한 전시는 너무 추상적이라 오히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고.
브런치집에서 나와서 바로 옆에 있는 미술관을 갈 때 비가 심하게 내린다 싶더니,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밖에 나와보니 빗줄기는 더욱더 심각해져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바람이었다. 유럽이니까 안 그러겠지라고 안일하게 넘겼던 나 자신을 한심해하며 차선책인 카탈루냐 미술관으로 가려는데, 비가 정말로 심각했다. 우산은 뒤집히고, 비가 사정없이 옷과 가방을 적시기 시작하고, 신발은 물에 잠기고, 설상가상으로 구글 지도는 길을 엉뚱한 곳으로 안내했다. 미술관 주변을 빙빙 돌다가 눈치 없이 챙겨 입은 회색 바지의 밑단이 검은색으로 보일 정도로 물에 흠뻑 젖은 것을 확인하고는 짜증이 확 차올라서 숙소로 발을 돌렸다. 신발과 양말은 도저히 마를 기세를 안보였다. 오늘 세탁기와 건조기를 이용해야 할 것 같다.
숙소에서 언제나처럼 뒹굴다보니 저녁이 다가왔다. 벼루고 있던 숙소 옆 맛집에서 빠에야와 샹그리아를 사먹었다. 샹그리아는 1L 단위로밖에 시킬 수 없었는데 그래도 굳이 시켜서 반이나 먹어치웠고 역시나 취했다. 빠에야는 맛은 무난했지만 푸짐했고 해산물이 넘쳐났다. 직원들은 친절했다. 괜찮은 식사였다.
'100일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0일 글쓰기: 191206 #54 터미널 (0) 2019.12.07 100일 글쓰기: 191205 #53 적당히 축축했지만 저에게는 폭우였다고요 (0) 2019.12.06 100일 글쓰기: 191203 #51 바르셀로나에서 혼자 (0) 2019.12.04 100일 글쓰기: 191202 #50 가우디의, 바르셀로나 (0) 2019.12.03 100일 글쓰기: 101201 #49 짜증 (0) 2019.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