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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서재 2019. 3. 17. 23:39
개인주의자 선언
작가: 문유석
출판사: 문학동네
정말 재밌다. 중년 남성(특히 고위관직에 있는)이 쓴 이런 디자인의 책을 읽고나서 후회한 적이 많다(실패할 걸 알면서 계속 손이 가…. 얼마나 잘났는지 어떻게 자랑하는지 솔직히 궁금하잖아). 근데 책취향이 비슷한 인간이 추천하길래 공강 때 학교 서점에서 사고 단숨에 읽어버림. 흡입력이 대단하다.
책은 크게 세 부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책의 제목 그대로 개인주의에 관한 내용이다. 크게 개인주의자인 작가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나와 한국사회가 불행한 이유를 개인주의와 연관시켜 해석하는 내용 두가지이다. 겸손하게 서술하셨지만 인생사 개오진다….라는 생각도 좀 있었음(읽어보면 알게 됨).
인상깊었던 부분을 좀 옮겨적어 보겠다.
타인과의 비교에 대한 집착이 무한경쟁을 낳는다. 잘나가는 집단의 일원이 되어야 비로소 안도하지만, 그다음부터는 탈락의 공포에 시달린다. 결국 자존감 결핍으로 인한 집단 의존증은 집단의 뒤에 숨은 무책임한 이기주의와 쉽게 결합한다. 한 개인으로는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면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고도성장기의 신화가 끝난 저성장시대, 강자와 약자의 격차는 넘을 수 없게 크고, 약자는 위는 넘볼 수 없으니 어떻게든 무리를 지어 더 약한 자와 구분하려든다. pg. 37
다 맞는 말이다. 입시공부를 하는 내내 대학 서열화에 물들어서 지냈고, 결국 원하는 대학을 왔지만 같은 학교에서 누군가와 인사를 나눠도 그 사람의 전공이 나보다 입결이 높으면 위축되고, 입결이 낮으면 우월감이 든다. 내 대학의 이름에 걸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 다수가 가는 방향으로 달리지 않는 것 같아 두렵다. 내가 다니는 대학보다 입결이 낮은 대학을 다니는 사람을 보면 당당해진다. 이런 요즘의 나 자신이 혐오스러운 나날에 이런 글을 읽으면 속이 시원하다.
2부는 타인에 대한 얘기. 작가가 재판을 맡았던 사건들과 일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일들 등등. 필리핀 법관의 눈물이 가장 인상깊었다.
3부는 더 큰 사회에 대한 얘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의 입시현황, 외국과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의 차이, 과거의 무지에서 비롯된 폭력들, 그리고 낙관주의자들에 대한 내용까지. 담대한 낙관주의자들이 꿈꾸는 대담한 상상이라는 글에서 읽으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부분이 있었다.
좀 엉뚱하지만 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를 보면서 미국이 무섭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젊은 과학 천재들이 픽사나 애플같이 자유로운 환경의 대학연구소에 모여서 일과 놀이의 구분 없이 자유분방하게 기발한 로봇을 만드는 모습, 인간의 외로움까지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 힐링 로봇 베이맥스, 거리낌없이 일본 문화에 대폭 포섭되어 마치 일본 식민지처럼 보이는 미래의 샌프란시스코. 미국의 문화적 포용성과 자신감, 상상력이 넘쳐나는 영화였다. 미국인들에게는 인류의 미래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자기들 손으로 직접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거대한 낙관주의와 자신만만함이 있다고 느꼈다. pg. 264
너무 좋지 않나요….. 내가 동경하는 미국의 요소들을 멋있게 표현한 문단.
문유석 판사를 <미스함무라비> 드라마의 대본과 원작소설까지 집필한 걸로 처음 알게 되었다.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이 드라마를 쓴 사람이 남자라는 것에 기분 좋은 놀라움을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 중요한 것을 똑바로 응시하는 드라마였다.
그렇게 똑바로 세상을 응시하며, 문제들을 짚어보고, 개인주의의 중요함을 역설하는 작가의 집필활동을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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