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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글쓰기: 191126 #44 마드리드 (2)100일 글쓰기 2019. 11. 27. 06:20
#44
마드리드 (2)
숙소가 너무 좋아요....
정말이다. 영국의 숙소보다는 물론이고, 청결도와 시설만 보면 호텔이라고 불러도 못지않을 정도다. 어제는 심지어 같은 방에 고객이 딱 한 명 있었고, 나보다 늦게 들어와서 일찍 나가서 독방을 쓰는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좀 살 것 같다.
프라도 미술관과 소로야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은 어마무시하게 넓었다. 여러 가지로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가 떠오르는 미술관이었는데, 아무런 사전조사 없이 무작정 방문한 나는 운 좋게도 미술관의 하이라이트 전시관부터 구경을 시작해서 상태가 가장 좋을 때 소로야와 고야의 주요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0층을 다 둘러보고 1층을 살피기 시작했을 때부터 다리와 발이 무지하게 아파오기 시작했고, 고야 특별전까지 본 후부터는 최악이었다. 1층과 2층은 고야와 벨라스케스의 작품만 쭉 둘러봤다. 어우, 아직까지 다리가 저린다.
소로야의 바닷가의 아이들을 그린 작품이 아직까지 인상깊다. 그림이 너무 좋아서 계속 그 앞에서 입을 벌리고 구경했다. 말솜씨가 부족해서 그 그림이 왜, 어떻게 좋은지 표현을 잘 못하겠다. 바다의 물결, 아이들을 비추는 물의 형상, 물에 젖은 정도를 알려주는 아이들의 묘사. 내 눈앞에 바닷가가 펼쳐져 있는 기분.
해변가의 아이들 그리고 프라도 미술관에는 고야의 작품이 무지하게 많다. 처음 미술관에서 접하게 된 고야의 작품은 사실주의적 그림들이었다. 스페인 전장에서, 가난에서 그가 목격한 것들. 사실 별로 와 닿는 것은 없이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만 신기해하며 해설을 들으며 그림을 눈에 담았다. 진정으로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은 black paintings라고, 그가 말년에 집안에만 틀여 박혀서 집의 벽에 가득히 그려놓은 기괴하면서 환상적인 그림들이었다. 누군가가 꾸는 악몽에 잘못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아, 이래서 고야가 유명하구나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몇 번이나 그렇게 어두운 그림들이 걸려있는 전시관을 돌아다녔다. 원래 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가 궁금했다. 굳이 벽에서 그림을 떼어내어서 이렇게 전시하지 않고 집을 원래 형태로 보존했어도 좋았을 텐데.
진격의 거인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아들을 잡아 먹는 사투르누스> 마지막으로는 고야의 궁정화가시절 작품들을 봤는데 부드럽고 사실적인 화풍 말고는 딱히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주의 깊게 본 작품 두 개는 그 유명한 <옷을 벗은 마하>와 <카를 4세 가족의 초상>. 고야의 스케치들과 펜화들을 모아놓은 특별 전시도 재밌었다. 발이 아파서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지만 집착적일 정도로 마녀와 관련된 낙서를 많이 했다는 것이 신기했고, 한 사람이 일생동안 그렇게 많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게 멋있었다. 벨라스케스의 하녀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프라도 미술관 여정을 마무리했다.
아,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사진 촬영이 아예 금지되어 있다. 옆에 사람이 찍길래 무심코 찍었다가 시큐리티 직원분한테 혼남. 참고하시길.
마드리드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소로야라는 화가를 알게 된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바다와 관련된 그림들이 좋다. 물을, 물가의 사람들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니.
소로야 미술관은 호아킨 소로야가 가족과 함께 머물던 생가를 하나의 미술관으로 꾸며놓은 곳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상적인 미술관은 아니었다. 한쪽 벽에 그림이 너무 많이 몰려있어서 제대로 감상하기에는 알맞은 배치가 아닌 방도 꽤 있었고, 중요해 보이는 작품에는 오디오 해설이 없는 경우가 있어서 황당하기도 했고. 하지만 생가 자체가 아름다웠고 (누가 소로야 미술관은 꼭 여름에 방문해야 한다고 했는데, 동의한다. 초록색으로 가득 찬 정원과 입구를 보며 여름에 한 번 더 오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가족에 대한 애정도 알게 되어서 의미 있었다. 그의 아내와 자식들을 그린 스케치가 가득한 집이 감동적이었다. 기념품샵에서 엽서를 잔뜩 사고 나서 오늘의 일정은 끝. 직원분이 매우 친절하셨다.
하루의 마무리
소로야 미술관이 숙소로부터 30분정도의 거리에 있는데, 그곳을 왔다 갔다 하니까 다리가 아프다. 반나절 동안 프라도 미술관을 돌아다닌 탓도 있고.
저녁으로는 한식당의 김치찌개를 먹었다. 사장님에게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걱정을 듣고(삼성이 외국에서 인기니 도둑맞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이셨는데 그 앞에서 저는 아이폰 쓰는데요라고 대꾸할 엄두까지는 못 냄ㅋ) 13.5유로나 냈다.... 그래도 찐한국인은 맞는지 국물요리를 먹으니까 좀 살 것 같다.
내일의 일정을 대충 짜고, 저는 자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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