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191116 #34 도덕성과 취향
#34
도덕성과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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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치마 여성혐오 논란의 핵심: '홍대 인디신 남성성'
팬들을 성적대상화하고, 여성 음악가를 동료로 생각하지 않는 남성성의 반영 | 검정치마의 새 앨범 를 들어봤다. 처음 들었을 때는 유명 음악가가 대성공 뒤 만드는 졸작을 듣는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메탈리카 팬들이 를, 오아시스 팬들이 를 처음 들었을 때 이런 느낌이었까 싶었다. 두번째 들었을 때는 '난해하다, 이걸 왜 이렇게 만들었나' 싶었다. 그동안 나온 앨범중에 가장 콘셉트가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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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문을 좋아했다. <비행운>을 부른 그 문문. 이런 말 하면 오혁이 떴을 때 나만 알 때가 좋았는데.. 하고 주위에 온 부심을 다 부리고 다니는 홍대병 말기 환자 혹은 힙스터로 보일 수도 있지만, <비행운>이 유명해지기 한참 전부터 좋아했다. 유튜브 인디 채널을 돌아다니다가 그를 발견했는데, 심플한 멜로디와 진솔한 가사, 그리고 목소리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 새끼가 성범죄자라는 것은 기숙학원에서 수능 공부를 한참 하고 있을 때 언니의 편지로 알게 되었는데, 애초에 ‘그’라는 인간을 좋아했던 게 아니라 그의 음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이니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문제는 수능이 끝난 후, 그의 음악을 계속 들을 것이냐 말 것이냐. 그의 음악을 서치하러 음원사이트나 유튜브를 들릴 때, 계속 양심이 찔리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예전에 쓰던 갤럭시 S6에 다운받은 노래 다섯개만 듣고 있다. 음원사이트나 유튜브와 달리, 이미 다운받은 것은 계속 듣는다고 해당 가수에게 금전적인 이득이 가는 것이 아니니까.
이런 갈등은 여성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일상에 넘치기 시작했다. 동양권 여배우를 개 같다고 칭한 백인 남자 새끼의 신작을 볼 것인가 아닌가. (다행히 필모가 내 취향과 거리가 멀어서 볼 일은 없다) 여성 혐오적 가사를 미친 듯이 써제낀 한남 인디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을 것인가 안 들을 것인가. (아, 이 새끼는 음악이 더럽게 내 취향이다) 열 살 연하인 전 여자 친구를 가지고 성적인 희롱을 하고 다닌 래퍼 새끼에 대해 어떻게 행동을 취할 것인가. (누군지 따로 말 안 해도 알겠지? 개새끼)
한동안은 강경파였다. 조금이라도 내 도덕성 레이더에 걸리는 사람은 누가 언급이라도 하면 눈살을 찌푸렸다. 야, 쟤는 이런 짓을 했어. 으윽, 빻았어. 음악을 들을 때나 드라마를 알아볼 때나 영화를 고를 때나 하나하나 검열하는 짓거리는 피곤했다.
그러다가 친구랑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가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그 친구는 소위 ‘우익’ 성향의 정치적 행보를 밟는 감독의 애니 시리즈를 좋아했는데, 아무렇지 않게 내가 돈만 안 쓰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대꾸했다. 그 친구는 도덕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세계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즐김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우익이거나, 여혐론자거나, 자기 기준의 선을 넘는 부도덕한 인간의 작품을 즐길 때는 그 인간의 수중에 돈이 안 푼도 안 들어가게 불법 다운로드를 하거나 한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뭔가 명쾌해졌다. 그래서 온건파로 나 자신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그 친구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 내 일상은 조금 더 평온해졌지만, 그렇다고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빻은 장르를 즐기거나 빻은 인간의 예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는 일이 있으면 빻았는데 어쩌겠냐…. 좋은데…… 이 정도는 좀 넘기고 돈만 안 쓸 거야….라고구차하게 웃으며 변명을 덧붙이고는 한다. 물론 선은 확실하다. 일정 수준 이상의 범죄자는 예전처럼 언급만 돼도 눈살을 찌푸리고 쌍욕을 한다. 그래도 자잘한 수준의 논란이 있는 예술은 눈을 감고 즐긴다.
나는 이정도의 타협을 할 정도로 자라난 나 자신이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