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100일 글쓰기: 191106 #24 호랑이 모형

휴초 2019. 11. 7. 00:03

#24

호랑이 모형

뉴욕의 지하철

 

나에게는 자그마한 호랑이 모형이 있다. 음, 이걸 '모형'이라고 하나? 어린 시절 무서울 만큼 커다란 물욕을 지니고 살았던 나는 가치 없는 잡동사니들을 얻어내고 버리는 짓을 수도 없이 반복했는데, 이 호랑이 모형은 그 많은 시도 사이에서 살아남았다.

 

많은 것이 갖고싶었다. 이유는 거창했을 때도 있고, 터무니없을 때도 있었다. 책에서 나오는 이 인물이 아미 나이프를 지니고 다니는데 (퍼시 잭슨의 아나베스입니다) 나는 이 인물처럼 쿨해지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고, 마침 자연사 박물관의 기념품샵을 들리는데 딱 아미 나이프가 보이고, 그러면 어떻게든 드러누워서라도 물건을 얻어내고. 이런 식이었다. 내가 왜 이런 인간이었는지는 잘 모른다. 부모의 탓을 할 수도 있고, 하기에 너무 치사하다 싶으면 뭐, 어쩌겠어 다 내 탓이지라고 중얼거릴 수도 있고. 남이 나에게 뭔가를 줄 때보다 내가 직접 고르겠다는 욕심으로 물건을 차지할 때가 많아서일까. 의미 있는 선물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 특히 어른한테서.

하지만 이 호랑이는 예외니까 아직까지 나에게 의미가 있다.

이 호랑이를 선물해준 사람은 어머니의 후배다. 어머니는 대학 시절과 회사 시절을 활발하게 보내셨고 수많은 후배, 동기, 선배와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신다. 이 후배분은 회사시절 후배셨다. 가족 전체가 미국에서 한 해를 보냈을 때, 우리가 머물렀던 곳 근처의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계셨고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얼굴을 마주했다. 

한 번은 언니와 내가 그 후배분의 기숙사에 들렸을 때가 있었다. 그 때 이 호랑이를 마주했다. 어디서 이걸 살 수 있냐고 대담하게 물었고, 후배분은 보스턴의 기념품샵에서 찾았다고 친절하게 대답을 하셨다. 나는 호랑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걸 계속 기억하고 있다가 보스턴에서 한참을 찾아다녔지만 발굴해내는 데는 실패했다. 그 이야기를 어머니가 후배분한테 전하셨고, 후배분은 호랑이를 향한 내 집착이 인상 깊으셨는지 박사과정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호랑이를 선물로 주셨다. 직접 건네주셨는지, 어머니를 통해서 건네주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호랑이를 가지고 싶다고 그 후배분 앞에서 열렬히 어필을 했는지, 딱 한 번 언급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후배분이 아직까지 작은 호랑이 모형과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는 당연히 모른다.

혹시 가도 기억하고 계신다면, 당신의 작은 호의와 친절이 열두 살짜리 초등학생에게 엄청나게 크게 다가왔다는 걸 아시기를. 드물게도 어른이 내게 물건으로 베푼 상냥한 호의였고, 나는 아직까지 이 호랑이를 볼 때마다 그 상냥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