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191106 #24 호랑이 모형
#24
호랑이 모형
나에게는 자그마한 호랑이 모형이 있다. 음, 이걸 '모형'이라고 하나? 어린 시절 무서울 만큼 커다란 물욕을 지니고 살았던 나는 가치 없는 잡동사니들을 얻어내고 버리는 짓을 수도 없이 반복했는데, 이 호랑이 모형은 그 많은 시도 사이에서 살아남았다.
많은 것이 갖고싶었다. 이유는 거창했을 때도 있고, 터무니없을 때도 있었다. 책에서 나오는 이 인물이 아미 나이프를 지니고 다니는데 (퍼시 잭슨의 아나베스입니다) 나는 이 인물처럼 쿨해지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고, 마침 자연사 박물관의 기념품샵을 들리는데 딱 아미 나이프가 보이고, 그러면 어떻게든 드러누워서라도 물건을 얻어내고. 이런 식이었다. 내가 왜 이런 인간이었는지는 잘 모른다. 부모의 탓을 할 수도 있고, 하기에 너무 치사하다 싶으면 뭐, 어쩌겠어 다 내 탓이지라고 중얼거릴 수도 있고. 남이 나에게 뭔가를 줄 때보다 내가 직접 고르겠다는 욕심으로 물건을 차지할 때가 많아서일까. 의미 있는 선물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 특히 어른한테서.
하지만 이 호랑이는 예외니까 아직까지 나에게 의미가 있다.
이 호랑이를 선물해준 사람은 어머니의 후배다. 어머니는 대학 시절과 회사 시절을 활발하게 보내셨고 수많은 후배, 동기, 선배와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신다. 이 후배분은 회사시절 후배셨다. 가족 전체가 미국에서 한 해를 보냈을 때, 우리가 머물렀던 곳 근처의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계셨고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얼굴을 마주했다.
한 번은 언니와 내가 그 후배분의 기숙사에 들렸을 때가 있었다. 그 때 이 호랑이를 마주했다. 어디서 이걸 살 수 있냐고 대담하게 물었고, 후배분은 보스턴의 기념품샵에서 찾았다고 친절하게 대답을 하셨다. 나는 호랑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걸 계속 기억하고 있다가 보스턴에서 한참을 찾아다녔지만 발굴해내는 데는 실패했다. 그 이야기를 어머니가 후배분한테 전하셨고, 후배분은 호랑이를 향한 내 집착이 인상 깊으셨는지 박사과정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호랑이를 선물로 주셨다. 직접 건네주셨는지, 어머니를 통해서 건네주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호랑이를 가지고 싶다고 그 후배분 앞에서 열렬히 어필을 했는지, 딱 한 번 언급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후배분이 아직까지 작은 호랑이 모형과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는 당연히 모른다.
혹시 가도 기억하고 계신다면, 당신의 작은 호의와 친절이 열두 살짜리 초등학생에게 엄청나게 크게 다가왔다는 걸 아시기를. 드물게도 어른이 내게 물건으로 베푼 상냥한 호의였고, 나는 아직까지 이 호랑이를 볼 때마다 그 상냥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