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가능한 꿈의 공간들> 듀나
휴초
2019. 11. 4. 19:37
가능한 꿈의 공간들
작가: 듀나
출판사: 씨네21북스
나는 듀나를 좋아한다. 공룡의 종류를 모르는 대중에 관해서 투덜거리고, 러블리즈를 덕질하고, <미스테리아>를 들추다 보면 가끔씩 그녀/그가 쓴 단편이 보이고. 잊을만하면 내 영역에 얼굴을 들이미는 그/그녀는 특이하고 매력 있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객관적인 위치에서 작품을 평가하는 다른 평론가, 칼럼니스트와 달리 듀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서 좋아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듀나가 본인의 취향에 따른 과격한 평가만 내리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할 때는 본인의 감상을 최대한 절제하고 정돈된 글을 쓴다. 많은 사람들이 후자를 모르고 전자로만 듀나를 판단하고 비난을 내뱉는데, 그런 평을 보면 속이 꼬인다.
지금까지 읽어보았던 평론집들은 대부분 작가가 좋아하는 영화를 나열하고, 그 영화가 자신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서술하는 반듯한 구조로 되어있었다. 그와 달리 이 책은 내가 아는 듀나처럼 지극히 개인적이고,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지나치게 '예민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어서 좋았다. <건축학개론>에서 엄태웅이 회상하는 수지는 한가인과 엄격히 다른 인간이라고 주장하고, 영화에서 나오는 애서가의 책장이 초라하다며 불평하고, 한국의 영화관에 마스킹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다. 누가 이렇게 기발한 주장을 글로 옮길 용기를 낼까. 종이책으로 소장해서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