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191016 #11 비문학 기피 현상
#11
비문학 기피 현상
고백하겠다. 나는 비문학을 싫어한다. 아니, 읽지를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일단 책을 읽는 행위는 타인과 소통을 덜 해도 되는 면죄부가 되어주었다. 내성적인 아이를 설명해주는 행위였으니까. 뭐, 두 번째로는, 책 읽는 것 말고는 딱히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취미가 있지 않았다.
티비를 보는 것도 금지였고, 컴퓨터를 보는 것도 금지였고, 정해진 코스대로 학원을 나돌아 다니는 것 외에는 밖을 돌아다닐 수 없었다. 부모님은 그 많은 것들은 금지하신 대신 거실에 커다란 책장 몇 개를 들여놓으셨고, 그곳을 각종 책으로 채워놓으셨다. 초등학교를 들어가서는 도서실을 하루에 몇 번씩 드나들었다. 재클린 윌슨과 로알드 달, 아스트리트 린드그렌을 좋아했고 나중에는 판타지 시리즈를 찾아 읽었다. 해리포터, 나니아 연대기, 그리고 타라 덩컨. 책은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이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떠드는 대신 글자에 파묻혀 있는 게 더 즐거웠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 똑똑한 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책만 죽어라 들여다 보는 나를 보며 부모님이 뿌듯해하셨는가? 를 물어보면 대답은 '전혀.'.... 둘은 소설책에만 빠져 사는 나를 못마땅해하셨다. 어느 순간부터 등교를 거부하는 나를 보며 소설에 빠져있지 말고 현실에 살라는 말을 하셨던 것도 같다. 둘은 틀리셨다. 나는 소설책만 읽는 아이가 아니었다. 수필과 에세이(둘은 같은 것인가요 다른 거인가요)에도 미쳐있었다. 중1 때까지는 자기 계발서에 가까운 에세이들에 환장했는데, 그 취향이 라디오 작가들의 감성 에세이들로 옮겨갔다가, 나중에는 본인의 경험만 드라이하게 적어놓은 두꺼운 수필집으로 고정되었다.
하하 안타깝게도 부모님의 요지는 수필집도 읽어봐라 가 아닌 비문학을 읽어라, 였다. 둘은 내가 애정 하는 소설책을, 수필집을 나부랭이라고 칭하신다. 아버지는 사회과학책만을 읽으시며 어머니는 교육학 책을 읽으신다.
자발적으로 비문학 책을 읽어본 경험은 정말로, 정말로 손에 꼽힌다. 성인이 되고나서도 거의 안 읽었다. 지금도 거의 안 읽는다. 요즘 들어서야 비문학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본래 지식의 습득은 비문학 책을 통해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읽어보려 해도 막막하다.
문제는 <어떻게 비문학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소설책과 수필집을 읽을 때는 커다란 부담이 없다. 그냥 읽으면 된다. 눈으로 텍스트를 훑다보면 서사가 눈앞에 그려지고, 그 서사는 흥미롭기 때문에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새겨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비문학을 읽을 때는 이루어지지 않는 게 문제다. 어느 부분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면 그 부분을 반복해서 읽어봐야 하고, 그 짓을 하다 보니 전 내용이 기억이 안 나고, 그 짓을 책 말머리에 이르기까지 계속하다 보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느낌이다. 그나마 관심 있는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쪽, 예술 쪽 책은 그 정도가 덜하지만, 과학과 기술 쪽 책이라면? 중간까지도 제대로 읽는 데 성공한 적이 없다...
뭐 그걸 극복하는 방법은 단 한가지라는 것을 안다(이래 봬도 수능 국어로 밥벌이를 하니 비문학을 머리에 쑤셔 넣는 방법은 알겠지). 메모를 하면서 비문학 책을 읽으면 된다. 그런데 너무 귀찮은 걸.... 메모를 하고, 전 내용들을 복기하면서 성의를 들여 독서를 할 생각에 비문학 책은 나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나는 그걸 기피하게 된다.
이거 어떻게 극복하지......
메모를 일상화하면 되나....... 그게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