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계속> <아무튼, 잡지> 메모
이러다가 아무튼 시리즈를 독파해버릴 지경.... 계속 읽게 되는 이유를 정리해보자면
1. 얇아서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읽는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듯?(굳이 첨언하자면 나는 진지한 비문학만 아니면 빠르게 책을 읽는 타입이다. <쾌락 독서>는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20분 만에 해치움)
2. 얇은 데다가 크기도 작다! 들고 다닐 때 부담되지 않는다.
3. 가벼운 에세이류를 별로 안 좋아한다. 하지만 아무튼 시리즈는 너무나 사소하지만 누군가는 분명히 애정을 가지고 있을 한 가지 주제에 관한 에세이이다. 한 권을 독파할 때마다 성취감이 드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나에게 익숙한 주제면 이것에 나와 비슷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역시 존재했군!이라는 안도감이 찾아오고, 낯선 주제면 익숙하지 않은 세계를 조금이나마 둘러보았다는 뿌듯함이 찾아온다.
빌리자마자 모두 읽어버린 오늘의 두 책은 익숙하다고 말하기도, 낯설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묘한 위치의 주제를 가지고 쓴 것이다. 읽는 내내 너무 좋아서 굴러 다녔다. <아무튼, 잡지> 표지에 그려진 일러스트가 진짜 익숙하고 사랑스럽다, 싶었는데 제가 사랑하는 김정연 님이 그리신 거더군요.
특히 좋았던 것은 <아무튼, 계속>. 나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사는 인생이 좋지만, 그 속의 정해진 패턴은 있어야 한다는 주의이다. 정해진 패턴이라는 것은 첫 번째, 효율적이고, 두 번째,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패턴을 만들어놓기 위해서는 많은 시도와 실패, 그리고 나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아무튼, 계속>을 읽으면서 그러한 패턴들을 하나의 책으로 만들 정도로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저자가 부러웠고, 그 패턴들을 어떻게든 지켜낸다는 내용을 읽고는 경외감마저 느꼈다.
1. 아무튼, 잡지
잡지가 좋은 건 무엇보다 달이 바뀔 때마다 새 물건을 사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서점 매대를 둘러보다 잡지들의 표지를 살피고, 어떤 기사가 들어 있는지, 인터뷰는 누구와 했는지 체크하고, 그중 몇 개를 골라 사서 품에 꼭 안고 혹은 넉넉한 사이즈의 천가방에 소중히 넣어 집으로 돌아와 마침내 아무렇게나 비닐을 벗긴 후 드디어 읽기 시작한다! 아무리 궁금하고 설레더라도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는 절대 뜯어보지 않는 것이 내 나름의 원칙이다. 잡지를 읽기에 최적의 컨디션-편한 복장, 약간의 간식, 안락한 자리(보통은 침대) 등-이 마련되지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섣불리 새 잡지를 펼치지 않는 것이다. pg. 14
불멸까지야 모르겠지만, 잡지가 수많은 가능성과 끝없는 변화를 제안하고 보여주는 매체라는 점은 확실하다. '네가 지금까지 알아온 것,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과 나은 것들이 있어.' pg. 58
선택의 폭이 넓다는 건 생각보다 삶의 질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이것과 저것만 아는 사람과, 이것과 저것만이 아니라 또 다른 것들도 많다는 걸 아는 사람의 시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잡지뿐 아니라 다른 물건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는 슈퍼에 가봐도 소스 종류만 열댓 개를 훌쩍 넘어간다. 심의 굵기를 조절할 수 있는 연필깎이라든가 담배를 잠깐 꽂아놓을 수 있는 아주 작은 금속제품처럼 '이런 것까지 있어야 돼?' 싶은 물건들도 많다.
나는'그게 꼭 있어야 돼?'라는 말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그게 없어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무언가는 아니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다만 있으면 더 좋은 것들, 더 알면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왜 기본만 챙기면서 살아가야 할까. '가성비'의 세계에서 벗어나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 무언가를 보고, 사고, 해보며, 우리는 조금 더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pg. 104-105
2. 아무튼, 계속
나에게도 일상을 유지하는 H빔과 같은 루틴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20분의 법칙'이다. 이름까지 붙였다는 것은 꼭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별다른 건 없다. 긴 시간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최소 20분 만은 옷만 갈아입고 무조건 집 안 정리를 하는 거다. (...)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했는데 집 안 바닥에 머리카락이 보일 정도로 어수선하고 개수대에 지난 저녁 설거지가 쌓여 있다고 가정해보자. 일단 피곤하니 잠시만 쉬고 치울 요량으로 소파나 침대에 몸을 던지면, 몸은 쉬지만 마음은 계속해야 할 일들 때문에 불편할 것이다. 쉬고 나서도 할 일은 그대로다. 즉, 시간을 유예할 뿐 제대로 된 휴식이 아니다. 정해진 루틴이 있으면 이런저런 해야 할 것들의 압박 속에서도 그 일을 미루며 괴로워할 시간에 그냥 자동으로 정리를 끝내도록 이끌어준다. 짧은 시간 움직이는 것으로 온전히 쉴 수 있는 긴 시간이 주어진다. pg.40, 42
혼자 먹는 이유가 끼니를 때운다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가능한 격식을 지킨다. 팔꿈치를 식탁에 대지 않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결코 동시에 쥐지 않는다. 스마트폰 대신 냅킨을 꼭 미리 준비해두고 중간중간 입가를 정리한다. 절대로 고개를 숙이고 밥을 허겁지겁 퍼먹지 않는다. 시선을 둘 곳이 어색하면 메뉴나 원산지 표기를 뭔가 생각하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응시한다. pg. 80
콜라: 여름에는 500밀리리터짜리 작은 페트나 330밀리리터 캔을 대량으로 구비해 냉장고 맨 위 칸에 시원하게 보관해두고 레몬이나 라임, 혹은 직접 기른 애플민트를 곁들여 먹는다. 레몬은 4분의 1, 라임은 반으로 갈라 즙을 짠 다음 껍질째 파인트 잔에 넣고 얼음을 바닥을 채울 정도만 깐다. 그리고 갓 딴 콜라를 붓고, 얇게 슬라이스 한 레몬이나 라임을 한 조각씩 띄운다. 갓 탄 콜라를 얼음 컵에 따르면 키포가 컵 밖으로 튀어서 끈적거리기 때문에 가능한 싱크대 안에서 둔각으로 기울여 천천히 따르길 추천한다. 애플민트의 경우 핵심은 유기농이다. 초여름에 애플민트 모종을 여러 개 사와 어느 정도 키운 다음 줄기를 잘라서 큰 화분에다 삽목 번식시킨다. 그리고 줄기가 많이 자라면 작은 잎이 대여섯 개 정도 달린 어린 줄기를 잘라내 파인트 잔에 넣고 긴 스푼을 어느 정도 짓이겨서 향을 낸 다음 얼음을 바닥에 깔고 탄산 기포가 향을 완전히 잡아먹지 않으면서 청량함을 유지하는 마지노선인 500 밀리리터 페트 콜라를 넣어 즐긴다. pg. 106-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