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열일곱, 괴테처럼> 메모

휴초 2019. 9. 20. 18:08

인상 깊었던 부분 메모

 

1. 

내가 고등학교에서 그나마 가장 진심을 담아 활동했던 것을 꼽는다면, 그건 바로 학교 도서부 동아리였다. 도서부원들은 점심시간 동안 대출과 반납을 맡아 하고 담당 책장 정리를 도맡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도통 책을 읽으로 오지 않아 학교 도서관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도서 수가 심각하게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오래되고 낡은 책들 천지여서 위에서 아래로 읽는 70, 80년대 스타일의 누런 책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곳에 애착을 느껴 책장에서 꺼내 읽을 만한 책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읽어버렸다. 가끔 도서관에서 빌려 쉬는 시간마다 짬짬이 읽었던 책들은 나의 기본 자양분이 되었고, 이곳에 애착을 느낀 나는 다른 도서부원들과 학교에 탄원을 해서 100만 원 도서 구입 명목의 비용을 받아 새로운 책을 주문할 수 있었다.

학교 도서관에는 민음사 세계문학시리즈 전 권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그걸 1번부터 순서대로 독파해나가는 게 크나큰 희열이었다. 바로 이때 나의 인생을 바꾼 세 권 중의 하나이자 니체가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양서"라고 평한 요한 페터 에커만의 저작 <괴테와의 대화>를 만나게 되었다. 괴테의 제자였던 에커만은 책에서 "인간은 아주 우연하게 행한 일을 통해서 자신에게 잠재해 있는 더욱 높은 것을 배우게 되는 법"이라고 적었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바로 진정한 천재성에 대한 정의를 나름대로 내리게 되었다.

괴테는 천재를 "의미 있고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고 활동하는 "생산력"으로 규정한다.

"어떤 사람이 이루어낸 작품이나 행동의 양이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을 생산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거네. 우리는 시집을 연달아 출판함으로써 생산적이라고 여겨졌던 시인을 알고 있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비생산적일 뿐이네. 왜냐하면 그들이 쓴 작품에는 생명력도 연속성도 없기 때문이지. 그와 반면에 올리버 골드스미스가 쓴 시의 분량은 얼마 되지 않으나 그래도 나는 그를 생산적 시인이라고 말하겠네. 그가 쓴 것은 소량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는 내재된 생명이 들어 있어서 영속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는 제자인 요한 에커만에게 이렇게 말한다.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늘 궁금했던 것이었다. 나는 왜 어떤 스타들은 반짝하고 사라져버리는지, 왜 내 주위 또래 친구들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로 유명했던 똑똑한 모범생들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순식간에 그 빛을 잃어버리고 소리 소문 없이 평범해졌는지 너무나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왜 그들이 일찍 생명력을 잃어버린는가를 공부해보고 싶었다. 그것을 알아야지만 괴테가 말한 영속력을 지닌 생산적인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스탠리 웰스의 <셰익스피어, 그리고 그가 남긴 모든 것>과 피터 게이의 <모차르트: 음악은 언제나 찬란한 기쁨이다> 전기를 읽고 나의 행동 모델에 가장 적합한 천재가 이 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둘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인류에 기여한 작품을 만들어낸 인물이라는 점에서 나는 괴테의 천재에 대한 정의와 꼭 부합한다는 생각을 했다. 또 셰익스피어와 모차르트는 우울하고 비관적인 천재 유형이 아닌,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는 점에서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했다. 생산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충동은 이제 열망으로 변했다.

반세기에 걸친 셰익스피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쓴 <셰익스피어, 그리고 그가 남긴 모든 것>에서 작가 스텐리 웰스는 '셰익스피어의 잃어버린 7년'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가 20세가 되는 시점부터 27세가 되는 해에 그의 공식적인 처녀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헨리 6세>를 들고 나오기 전까지의 7년 동안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연구 결과 끝에, 학자들은 이 기간 동안 셰익스피어가 한 소극단에서 일하며 극작가들의 미완성된 원고들을 자기가 수정해나가는 과정을 거듭하며 자신이 훗날 극작가로서 성장할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미 나는 학교를 그만둬야겠는 엄청난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이미 학교를 그만 둔 뒤 혼자만의 프로그램을 머릿속으로 짜고 있었다.

'그래. 나에게는 셰익스피어의 잃어버린 7년이 필요해. 바로 바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한국의 중고등학교 시스템에서 나는 더이상 보여줄 게 없어. 이미 고갈된 느낌이야. 나는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이렇게 7년이라는 시간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해서 보내는 시간이 아닌, 예민한 감수성으로 최대한 많은 것을 흡수해서 숙성의 시간을 거쳐 탁월한 작품-이론이든, 사상이든, 책이든-으로 결과물을 보여주자.

 

2. 

삶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던 어릴적과 다르게 약간 자신감을 잃고 의기소침해 있던 나는 유년기의 미소가 가득하고 자신만만하며 활기찬 모습을 되찾았다. 서둘러 나는 내가 닮고 싶은 여왕들을 찾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여왕, 엘리자베스 여왕, 예카테리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초상화를 방에 붙여 놓고 그들의 삶을 철저히 연구했다. 관련된 모든 것을 읽으며 내 성격을 조금씩 바꾸어나갔다. 마치 배우가 맡은 배역을 위해 실제로 성격을 바꾸어가듯이 말이다. 그들은 나와 비슷한 어린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아 정적들을 물리쳐가며 스스로 목숨을 부지하는 수준에서 천하를 호령하는 강력한 여왕으로 탈바꿈한 역사적인 인물들이었다. 나는 그들에 감정이입하며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웠다.

(...)

어릴 적 사랑해마지 않았던 동화책 <소공녀>는 인생 전반을 지배하는 테마곡이 되었다. 나는 내 스스로 즉위 전 빅토리아 공주라고 상상하며 '켄싱턴 규칙'을 만들어놓고는 'Expired by the end of year 2011' 즉 2011년 말에 종료된다고 적어놓기도 했다.

그 중 핵심적인 것은 천 권에 가까운 책을 읽는 것이었는데, 그간 읽었던 독서목록을 훑어보면 천재, 천재성, 무의식, 정신분석학, 역사 속 인물들의 전기, 영웅서. 문학소설, 베르사유 궁전과 프랑스 왕정생활, 롤랑 바르트의 서적, 잉그리드 버그만 전기, 그리고 뉴욕 아프트에 관한 예술서적은 물론, 유명 작가들의 일기 모음집, 아동심리 분석, 요절한 랭보의 시집까지 읽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웠다. 러시아 문학에 잠깐 심취했던 적도 있는데, 톨스토이와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을 비교하기 위해 톨스토이가 쓴 <셰익스피어에 관하여>라는 텍스트를 구해서 읽기도 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굶주림보다 평범함을 더 두려워한다."는 말을 반복해서 적어놓기도 했다. 위대한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생생하게 상상하기 시작하자, 나는 그들처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세계가 곧 내 세계가 되기 시작했는데, 분명한 건 뇌는 실제로 경험한 것과 이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커리큘럼을 구축하기도 해는데, 우선은 가장 기본적인 교양은 외국어 구사 능력과 글쓰기였다. 모국어나 다름없는 영어와 한국어를 제외한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일본어를 고등학교 내내 공부했다. 또한 예술적인 갈증을 채우고 싶었기에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오페라 전집을 다시 듣기 시작했고, 풍월당이나 예술의 전당에 찾아가 수업을 듣기도 했다. 대부분 40~50대 중장년층 수강생들 사이에 나 홀로 교복을 입고 있었다. 먼저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신기한 눈치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눈빛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때는 더 높은 것을 찾아 방황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똑같았지만, 나는 막연한 두려움으로부터 초연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이 내 눈에서 두려움을 읽을 수 없도록 할 테야. 역사 속에 어느 시대에나 지금보다 훨씬 힘든 환경에서 전쟁을 치러가며 생명을 부지했던 사람들보다는 나은 처지이지, 뭐.' 나는 현재의 불행을 참아가며 미래의 행복을 약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이 무기력하고 무능력해 보였다. 자유로움은 매 순간 느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만히 앉아서 자유를 기다리는 건 바보같은 짓이라고 느꼈다.

 

3.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천재성의 발달 과정을 면밀하게 탐구한 나는 천재들이 모방에 탁월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익혔다. <모차르트>에서 역사학자 피터 게이는 모차르트가 영재에서 성장이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던 데에는 모방을 꼽았다. "모차르트는 습작 시절에 당시에 유행했던 작곡가들의 작품을 들으면서 귀중한 시간을 보냈고, 다른 초심자들처럼 그들의 작품을 통째로 부지런히 베끼곤 했다. 그의 측출나게 섬세한 흡수력을 언제나 가동 중이었기 때문에, 그는 당대의 지배적인 양식들을 자유자재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결과 그 시대 최고 작곡가들의 악상이 그 자신의 악상속에 메아리치게 되었다. 모차르트의 학습 방식은 거의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이 밟았던 것과 같았다. 즉 선배들의 작품을 학습하고 모방하면서, 그 과정에서 자기 나름의 독착성을 향해 힘겹게 나아갔던 것이다."

(...)

공교롭게도 나는, 신동이라 불리며 유럽 왕실 곳곳으로 연주를 다니던 모차르트에게, 또한 프로이트나 아인슈타인에게도 세상의 관심과 멀어져 성장할 시간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 교육에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는 숙성의 시간과 사유, 은둔의 기간이라는 점이었다. 이 시기 나는 학습 계획서를 내 힘으로 만들어가며 개요, 구성, 탐구 주게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며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공부를 커리큘럼을 알아서 짜는 데에 이미 능숙했다. 교재를 선정하는 교재 및 부교재 칸에는 매일 시간을 내서 창작, 극, 시, 소설 한 작품씩 읽고 해석하는 공부를 했다. 또한 문장을 수집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일기에 "책을 읽어서 내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세상의 모든 환희를 찾겠다."고 적어놓은 나는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며 좋은 문장을 천천히 컴퓨터에 타이핑하며 음미했다.

"문장들을 정리해놓은 종이들과 일기, 생각 들을 모두 날짜 순으로 차곡차곡 정리해놓았다. 날짜를 써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다. 종이 묶음이 내 손바닥 크기만큼 쌓였는데, 언제쯤 내 키까지 올라올 수 있을까 궁금하다." (2010년 10월 2일)

필사만큼이나 일기를 열심히 썼는데, 하루 일과 중 산책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했다. 2009~2011년 시기에 쓰던 일기의 주된 내용은 특별한 이벤트보다는 당일 어떤 공부를 했고 거기서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한 자기심리분석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일기조차 평범하게 쓴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일기를 잘 쓰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가 담긴 원서를 구매해서 읽고는, 'A Writer's Diary'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녀의 일기에서 좋은 문구들을 베껴보기도 했다. 영어 공부의 일환이기도 했는데, 한동안은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브드 소로와 랄프 왈도 에머슨의 철학에 푹 빠져서 그들의 편지와 일기를 수집해보기도 했다. 정돈된 것이든 무질서한 것이든 관계없이 일기장에 적힌 생각들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런가 하면, 톨스토이가 열여덟 살 때부터 쓰던 일기를 읽고는 일찍 일어나지 못한 자신을 나무라는가 하면, 규칙적인 삶을 살기 위해 그가 노력했던 부분들을 그대로 답습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