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나의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연대기 (1)
#84
나의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연대기
이 주제가 퍼뜩 떠오른 것은 나의 10대를 어느정도 차지하는 하이큐!라는 만화의 최근 전개를 알고 충격에 빠졌기 때문이다.
[스포일러 alert]
하이큐!란 고등학생인 히나타 쇼요, 카게야마 토비오가 주인공인 배구 만화다. 존나 재밌다. 둘은 카라스노 고등학교 배구팀에서 뛰며 전국대회까지 진출하는데.....
자,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것까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 둘의 다음해를 비춰야 할 것 아닌가. 만화는 곧바로 카라스노의 실패 이력을 줄줄 읊은 후, 둘이 성인이 된 후 프로가 된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고등학생 때, 자퇴생 때 하이큐를 매주 챙겨 보며 둘이 1학년을 끝내고 새로운 인재가 카라스노로 들어왔을 때의 미래를 그리며 즐거워했다. 그랬던 기억이 모두 와장창 깨진 것 같아서 얼떨떨하고 슬프고 허무하고..... 작가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닌데 뭐 내 어린시절 기억이 퇴색되는 건 역시나 기분이 더럽다.
초등학교 때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또래 아이들을, 인터넷에 떠도는 소위 '오타쿠'들을 마냥 동경했다. 그런데 나한테는 진입장벽이 유난히 높게 느껴졌다. 웹툰은 쉬웠는데, 일본 만화는 어떻게 넘겨서 읽는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은 볼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찾아내는 지도 모르겠고 또 어떻게 같은 '오타쿠' 친구를 찾는지도 모르겠고.
그 진입장벽을 넘게 도와준 친구를 중학교 1학년 때 만났다. 우리 무리에 있던 유달리 친했던 친구가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알려주었다. 내 첫 만화는 <블리치>였다. 계기는 전혀 기억안나고, 1부였던 소울소사이어티 편의 절정 부분을 좋아해서 단행본을 사모으고, 애니메이션을 정주행했다. 물론 2부부터는 개씹노잼이 되고 작가는 우익 논란을 화려하게 터뜨렸기 때문에 애정이 식었지만.
만화로만 따지자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일본 만화책을 사모으는 게 하나의 취미가 됐다. 만화책 한권에 4500이니 주머니 사정에 큰 부담이 되지도 않았고, 언니도 같은 취미를 가지게 되면서 어느 부분이 재밌고 어느 만화를 시작할지 토론하는 재미도 생겼고.
먼저 생각나는 것은 <흑집사>. 그 오타쿠 친구가 겁나 좋아해서 나도 따라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묘한 맛이 있었다. 일단 작화가 매우 화려해서 눈이 즐겁고, BL 독자의 심장을 뛰게하는 동인요소가 곳곳에 숨어있어 설레고, 무엇보다 마냥 마니아틱한 맛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전개가 의외로 충실하게 흥미로웠다. 아무렇지 않게 던져둔 떡밥을 제때제때 회수하지 않나, 역사적 사실을 잘 따라가지 않나. 친구가 중고로 팔아넘기려던 전권을 싸게 받아와서 충실하게 보충했다. 이것도 매달 챙겨서 읽었다.
그 다음으로는 <바쿠만>이 생각난다. 쪽팔리지만 중학교 3학년까지 그림은 좆도 못그리면서 꿈은 웹툰작가였는데, 중학교 2학년 특활시간인가 들어온 만화 선생님이 추천해줬던 걸로 기억한다. 재밌고 그림체도 준수하고 모범적인 소년만화다. 물론 일반적인 일본 소년만화인만큼 매우 빻았음. 20권 전권을 고입을 설렁설렁 준비하던 언니와 번갈아가면서 사모았지만, 여혐요소가 너무 심하다는 판단에 작년인가 모두 버렸다.
그리고 <H2>! 옛날 소년만화를 하나 독파하고 싶다는 마음에 딱 보아도 그림체가 90년대 그 시절인 만화책을 하나 골라서 읽어봤는데(참고로 완전판을 산지라 가격은 7000원 언저리였다) 1권이 존나게 재밌는 거다! 그래서 주욱 사모았다. 이것도 토론할만한 요소가 꽤 많고(히로와 히데오, 하루카와 히카리의 애정관계가 주) 주인공들이 먼치킨인 만큼 시원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이것도 <바쿠만> 못지않게 빻았지만, 묘한 애정 때문에 아직 못버렸다.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꾸준히 사모으는 시리즈인 <3월의 라이온>. 주인공이 장기기사고, 그가 성장해나가는 일상을 그린 귀여운 만화다. 장기의 내용을 몰라도 재밌고, 아카리자매의 일상요리와 캐릭터들의 귀여움 때문에 많이 아끼는 시리즈. 작가가 고양이와 인물을 너무나도 귀엽게 그린다!!!!
이것말고는 다 모은 일본만화책이.... 없을걸....? 기억에 남을 만큼 즐기지도 않았거나. 애니메이션도 한꺼번에 정리하려고 했는데 그냥 2편에다가 정리하겠다.
어떻게 매주 챙겨봤나요? 라는 질문에 대답하자면 부끄럽게도 불법스캔사이트를 이용했다. 할말이 없다... 저작권의식도 없었고, 염치도 없었고.
그밖에 즐겁게 봤던 일본만화를 나열하자면
<킹덤> 진나라 시절을 그린 전투 소년만화. 개재밌음 ㄹㅇ
<오란고교 호스트부> 저에게도 이런 순정만화를 진심으로 설레어하면서 읽었던 시절이 있답니다.
<너에게 닿기를> 이하동문. 근데 이건 둘이 사귀기 시작한 이후로 재미없어짐. 모두가 인정할걸?
<은수저> 3월의 라이온과 비슷한 느낌. 모범적인 성장 만화. 읽다보면 배고프다....
분명 더 있을텐데. 생각나면 그때그때 추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