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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두 개의 단상

휴초 2020. 1. 10. 23:30

#76

두 개의 단상

 

1. 허무하지 않게 쉬기

오늘도 친구를 만났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봤다. <나이브스 아웃> 정말 재밌다. 어릴 적 도서관 구석에서 찾아내 조심조심 몇 권씩 빌려 읽던 엘러리 퀸 시리즈가 생각났다. 요즘 영화 치고는 드물게 '착한 마음씨'를 강조하는 캐릭터들도 나쁘지 않았다. 벼르고 있던 러닝화도 사버렸다.

그제도 같은 친구를 만났고, 어제는 드라마를 계속 보다가 책 한권을 끝냈다. 언니와 또 다른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 

어제 다짐한 대로 마냥 시간을 버리고 괴로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의식적으로 자제하고 있다.

허무하지 않게 쉬는 게 이런 기분일까. 약속이 띄엄띄엄 잡혀있고, 돈은 사람과 만날 때만 쓰고 있고,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홍수 속에서 헤매지 않고 즐거운 것만 딱딱 골라서 취하고 있다. 해야 할 것이 슬슬 생기고 있지만 아직은 벅차지 않다. 

 

2. 돈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봤던 <레이디 버드>의 어머니 캐릭터를 보며 어쩔 수 없이 생각 난것은 내 어머니. 귀에 딱지가 앉도록 쉴 틈 없이 금전적인 지원에 관한 설교와 불평을 들으며 자란 터라 나도 돈에 얽매여있다. 사람을 볼 때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돈을 생각한다. 내가 제어할 수 없다. 비싼 가방을 메고 있으면, 누가 사줬을까, 부모님이 사줬겠지, 스스로 샀다면 용돈을 대체 얼마 받는 걸까. 이런 생각까지 이어서 하다가 흠칫 놀란다. 그런 나 자신이 너무 싫다.

왜 이렇게 옷은 비쌀까. 만나게 되는 사람은 한정적이고 밖으로 나돌아 다닐 일은 많고. 옷을 바꿔 입어야 하는데 집에는 옷이 없다. 할 수 없이 옷을 사려면 한 벌에 오만원은 하고. 스무 살이 되어서 찾은 대책은 빈티지 사이트인데, 사이즈에 맞지도 않고 재질이 이상한 옷이 도착하면 울컥한다. 

화장품도 그렇다. 기초 화장품은 툭하면 떨어지고. 괜찮다는 제품들은 역시 삼사만원은 기본. 시도해보고 싶은 화장법은 한참 남아있다- 섀도도 제대로 못해봤고, 아이라인도 감을 못 잡겠고, 뷰러. 속눈썹 연장을 하고 싶다. 그리고 머리를 다듬고 싶다. 숱도 많고 모발도 굵어서 제멋대로 뻗치는 머리가 짜증난다. 미용실 가격은 도저히 개인 돈으로 감당을 못하겠어서 눈치를 보며 부모님께 부탁해야 하는데 으윽 싫다. 게다가 피어싱도 돈이들고. 가방도 별로 없고.

책은 살 엄두도 내지 못한다. 공간도 없고, 샀다가 실망하는 일도 허다하니 시도하기도 귀찮다. 

친구를 한번 만날때마다 몇만 원은 깨지는 게 슬프다. 개강하면, 사회로 돌아가면 어떡하지. 감당이 가능할까?

누군가 일자리를 좀 줬으면 좋겠다. 높은 시급은 기대도 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