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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미친 듯이 좋아하고 싶어

휴초 2020. 1. 8. 01:18

#73

미친 듯이 좋아하고 싶어

 

뭔가를 정말로 좋아한다는 감정이 슬슬 가물가물해진다.

먼저 생각나는 것은 아이돌. 이 주제에 관해서 공감을 해주는 또래 여성은 정확히 반밖에 안되는데(나머지는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를 못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인터넷 집착이 심각했고 현실을 도피할 수단이 급급했던 나는 아직까지 탈케이팝을 못하고 있다. 한심한 걸로 이러쿵저러쿵 이십 대 청춘에게 욕을 퍼붓고 현실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주제로 미친 듯이 논쟁을 벌이고 하는 꼬락서니가 보기 짜증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떻게든 탈케이팝을 해야지 하면서 다시 한번 트위터로 돌아가 떡밥을 챙겨보고, 스밍을 돌리고, 내 새끼가 제대로 된 활동을 보장받았으면 하는 넋두리를 늘어놓고, 어쩔 수 없는 아이돌 빠순이로 계속 살아가고 있다. "미친 듯이 좋아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역시 아이돌인데 1. 내가 일 년가량 계속 파던 그룹이 소속사로부터 제대로 된 투자를 받아서 덕질이 즐거워지거나 2. 그룹에 멤버 수가 추가되거나 그룹 이름이 바뀌어서 제대로 출격한 뒤 활동이 그럴싸해져서 덕질이 즐거워지거나 3. 지금과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서 내가 지쳐서 다른 아이돌 그룹으로 갈아 탄 뒤 신나게 덕질하거나 이 세 가지 루트 중 하나를 탈 것 같다.

그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드라마 장르. 이번 해에는 이상한 의무감에 휩싸여서 많은 드라마를 챙겨봤는데 완전히 꽂혀서 덕질 계정을 만들고, 2차 창작을 하고, 같은 장르의 친구들을 사귈 의욕이 들 정도로 나를 휘감는 드라마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나마 근접했던게 넷플릭스의 <루시퍼>. 루시퍼가 귀엽고 클로이가 멋있어서 끝까지 달렸던 드라마인데 악마 주제에 인간과 부딪치며 사춘기를 겪는 루시퍼가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맛이 있고 신화 속 요소를 찾는 재미도 있다. 근데 미칠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았다. <피키 블라인더스>도 연초에 잠깐 꽂혔었는데 울적해서 시즌 2를 보다가 때려치웠다. 요즘 핫한 <진정령>은 보다가 지쳐서 원작 소설로 갈아탔고 생각보다 제대로 된 BL이라 당황함. 일단 끝까지 읽었고 드라마 안 위무선이 과도하게 잘생겨서 드라마도 끝까지 달릴 것 같지만 원작 소설의 무협 비중이 조금만 더하고 소설의 두께가 더 방대했으면 제대로 덕질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쉬워라.

항상 클래식한 건 영화다. 모두가 한번쯤은 파봤을 법한 해리포터 시리즈도 남아있고 스타트렉도 있고. 해리포터나 다시 재탕해 볼까.

은근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미국 애니. <스티븐 유니버스>를 모두 끝냈고(적당히 파고 있다) <어드벤처 타임>을 조금씩 달리고 있는데 스유에서 그랬던 것처럼 뒷통수를 제대로 쳐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왜 항상 미지근한걸까. 미지근해도 부지런하게 앞을 보며 걸어가다 보면 뜨거워질 날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