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100일 글쓰기: 191202 #50 가우디의, 바르셀로나

휴초 2019. 12. 3. 05:34

#50

가우디의, 바르셀로나

 

밤늦게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같은 방을 쓸 다른 숙박객들은 모두 벌써 잠이 들어있었고, 나는 조심조심 짐을 풀고 씻고 바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빨래는 잔뜩 쌓여있고, 짐은 정리가 안되어있고, 머리는 축축한 채. 눈이 감기기 전에 용케 다음 날에 가이드 투어 일정에 맞춰 알람을 맞춰놓기는 했다. 안 그래도 늦게야 잠을 잘 수 있어서 수면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데, 새벽에 같은 방을 쓰는 누군가가 알람을 맞춰놓고 방을 나가버려서 체감상 십분 동안 알람 소리를 들어야 했다. 알람 주인은 돌아오지 않고, 같은 침대를 쓰는 사람은 끌 기세가 없길래 그냥 내가 꺼버렸는데, 폰에 뜬 한글들을 보니 한국사람이더라. 결국 찝찝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했다. 

체크인을 하고 깨달은 것은 이 호스텔이 조식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름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고 보니 아침 따로 사서 먹을 시간이 없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 근처에 맥도날드가 있어서 오랜만에 맥모닝이나 먹어볼까 했는데. 크루아상과 핫초코로 아침을 때워야 했다.

이주 동안 자유여행을 하며 내가 루트를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막막함, 일일이 장소에 대한 설명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번거로움, 이동수단에 대한 부담에 지쳐있었던 나에게 오늘의 가이드 투어는 선물 같았다. 편하고 유익하고 재밌었다.

루트는 까사 바트요-까사 밀라-꼴로니아 구엘-구엘 공원-사그리다 파밀리아 순이었고 중간에 해변에서 근사한 점심식사를 가졌다. 비싼 돈을 내고 빠에야와 레몬맥주, 문어를 먹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번 여행 들어 처음으로 가지는 제대로 된 식사였다. 먹물 빠에야가 정말 정말 정말 맛있었다.... 맥주도....

까사 바트요는 한 번 더 가볼 생각이다. 밤에 가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혼자서 건축물을 둘러본다면 이야, 예쁘네 하고 단순히 눈으로 감상만 했을 것을 전문적인 설명을 들으니 배경지식도 쌓이는 것 같아 뿌듯했다. 안 좋은 점이라면 내 눈으로 그걸 즐길 충분한 시간은 안 주어졌다는 것인데, 바르셀로나에 아주 오래 있을 계획이니까! 별로 불만은 없다. 구엘 공원은 별 다른 감흥이 없었고, 나를 가장 충격에 빠뜨린 것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였다. 유치하고 지나치게 문학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말 그대로 황홀감에 젖어서 성당을 돌아다녔다. 막 지기 시작한 노을에서 빠져나온 햇빛이 온갖 색의 스테인글라스를 거쳐서 천장과 바닥, 벽을 갖가지 색깔로 물들였고, 오르간에서는 잔잔한 성가가 울려 퍼지고,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는 아베마리아가 흘러나오고. 사그리다 파밀리아는 외벽과 마찬가지로 내부 또한 경이롭도록 복잡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성당의 앞과 뒤에는 정교한 조각이 자리하고 있었고,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종교에 무지한 나는 가이드의 성경 이야기를 들으며 조각 하나하나를 계속 들여다보았다. 일상에서 나도 모르게 무시했던 성경에 그렇게 많은 의미가 있다니 놀라웠고, 특이하게도 서사적으로 재밌었다. 수비라치의 조각이 기억에 남는다.

구엘 공원을 돌아다니며, 웃기지만 과연 가우디를 성공적인 건축가라고 불러야 할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그의 작품은 위대하고, 바르셀로나를 하나의 거대한 관광도시로 만들어놓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설계를 하면서 그가 의도한 대로 풀린, 그의 의도대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작품은 과연 있는지를 생각했다. 까사 밀라는 특이한 모양과 곡선을 고집한 턱에 벌금을 물고, 분양도 되지 않았다. 꼴로니아 구엘의 구엘 성당은 기반만 남아있다. 구엘 공원은 원래 주택 단지로 사용될 계획이었는데, 단순한 관광지로 사용되고 있다. 그냥 내 속이 꼬여서 심통난 반응을 보였던 것일 수도 있다. 구엘 공원은 수리 때문에 온갖 부분들이 수리 중이었고, 티켓의 값은 비쌌고, 생각보다 인상적이지 않았으니까. 이상적인 건축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무심코 했다. 가우디의 고집과, 햇빛을 받아 파도의 거품처럼 반짝거리는 구엘공원 저택의 하얀색 타일 지붕을 대비해보았다.

아, 내일 계획을 제대로 짜고(사실 일주일 계획을 제대로 짜야 하는데....) 자야 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