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100일 글쓰기: 191118 #36 런던 (1)

휴초 2019. 11. 19. 07:16

#36

런던 (1)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비행기를 탄지 열두 시간이 넘었고 영국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이어폰 커넥터가 부러졌다. 하. 하. 하. 시발. 어제 헐값에라도 무선 이어폰을 하나 사버릴걸. 존나 후회된다. 

첫번째 비행기는 인천-푸동(상하이) 라인이었고 비행은 두 시간짜리였다. 졸려서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에 잠들었다. 옆자리에서 여자 일행분들이 엄청 시끄럽게 떠들었던 것은 기억나는데 그것도 무시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계속 잤다.

경유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냥 시키는대로 쭉 가고 짐 검사만 받으니까 끝나더라. 아, 자동출입국 심사 때 개뻘짓을 해서 몇 분이 지체되기는 했다. 겨우 게이트를 찾아서 탑승시간을 기다리다가 상하이가 한국보다 한 시간 느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다리는 동안 음악을 듣고, 넷플릭스 힐다를 봤다.

그리고 지금 앉아있는 비행기는 푸동(상하이)-런던 라인으로, 꼬박 열두시간이 걸리는 비행을 하고 있다. 도착하기까지 네 시간 정도가 남아있다. 그런데 이어폰 커넥터가 망가졌다. 아이폰에 담긴 음악을 못 듣는다. 넷플릭스도 못 본다. 썩을. 그래서 메모장 앱을 켜서 이런저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비행기도 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정신없이 잤는데, 너무 잤는지 이제는 머리가 아프다. 가족들과 여행을 다닐때는 오랜 비행을 정말 좋아했는데. 비행기에서 할 것도 잔뜩 가져오고, 심심하면 떠들고. 혼자 온 여행이라서 그런가 짐을 정말 신중하게 싸야 했고 돈도 모자랐고 따라서 책을 챙기는 것은 꿈도 못 꿨다. 그래서 지금 드는 생각은 엉덩이 아프다. 입국하고 유심칩 끼우고 입국신고절차를 마치고 교통권을 끊고 이 일련의 과정이 고스란히 나에게만 남겨져있는 게 부담스럽다. 이 정도?

왼쪽에 있는 영국인 (동양계인데 완벽한 영국 악센트를 쓴다. 개간지난다.) 꼬마 아이가 리틀 믹스의 음악을 듣고 있다. 왼쪽 앞 승객은 중국어 자막으로 토이스토리 4를 보고 있다. 어쨌거나 먼길을 떠나는 비행기는 신비하고 두근거린다. 낯선 땅에 발을 딛고 낯선 길을 헤매고 생경한 공기와 언어를 듣고. 무섭다면 무섭지만 혼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흥분된다.

영국에서 헌책방을 하나 찾아서 책을 사읽는것도 괜찮을 것 같다. 피시 앤 칩스를 사서 공원 잔디밭에 앉아 마구 먹어보고 싶다. 뮤지컬을 보는 건 어떨까? 미술관과 박물관을 혼자서 헤매는 건 재밌겠지. 

여행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런던의 지하철 안에서

런던이다!! 막상 도착해서 여행이 즐겁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한것이 무색하게, 지하철만 탔는데도 즐겁다. 별로 무섭지도 않다. 영어 사용국가라 언어장벽이 거의 없어서 그런가.

자, 아직도 문제는 똑같습니다.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한시간이 넘는 시간이 있는데 제 이어폰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아 다행히 데이터가 다시 작동한다.

 

 호스텔 안에서

호스텔 안에서 짐을 다 풀고 침대에 쪼그려 앉아있다. 으, 춥고 불안하다.

불안한 이유는 다리의 상처 때문이다. 포장용지를 뜯으려고 면도칼을 휘두르다가 다리가 깊게 베였고, 피가 나기 시작했다. 다시 짐을 뜯어서 밴드를 찾고, 연고를 찾는 게 너무 귀찮아서 일단 내버려 두고 있는데 큰 일만 안 났으면 좋겠다.

영국의 지하철은 짜증 나게도 엘리베이터가 거의 없었다. 덕분에 처음에는 끙끙거리면서 짐을 날랐는데 나중 몇 번은 영국의 친절한 신사분들이 앞장서서 짐을 들어주셨다. 진짜 감동 먹음. 힘들게 호스텔을 찾고, 짐을 풀고, 씻고 드러누워있다.

호스텔을 처음 이용해보는데 저어어엉말 불편하다. 싼 게 좋다고 혼성 도미토리를 덜컥 예약해버린 내 탓이 가장 크겠지만 1층 침대를 쓰는 남성분이 좀 신경 쓰이는 게 첫 번째. 짐을 보관하는 공간이 별로 없는 게 두 번째. 콘센트가 1층 침대만 이용할 수 있게 설계된 게 세 번째. 덕분에 속옷과 내일 입을 옷, 화장품 및 필요한 짐을 부랴부랴 싸서 2층 침대 안 내 공간에다 나란히 정리해놓았는데 이래서 편하게 잘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콘센트는…… 1층에서 힘들게 연결해서 2층 침대로 이어지게 설치해놓았다 하하 일일이 내려가서 다시 분해할 거 생각하면 무지 엿같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침대마다 커튼이 설치되어 있어서 프라이버시는 어느 정도 보장된다는 것이다. 

음, 샤워용품과 책가방, 화장품은 따로 잠가서 보관해야 될 것 같고, 양말이랑 속옷은 그냥 침대에 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 돈과 카드, 여권이 들어있는 색은 지금도 허리에 차고 있다. 항상 지니고 다녀야지.

빨리 내일 여행 계획을 짜고 자야겠다.